[토요세평] 높은 분들 욕심 좀 덜었을까?
이진곤 언론인·경희대 객원교수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 가는 길도 무소유 그것이었다. 관도 없이 대나무 평상 위에 가사 한 장 덮고 누운 채였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십시오." 중생들은 그렇게 부르며 안타까워했지만 스님은 가지 않는 길이어서 오지도 않을 길로 아주 떠나갔다. 다비가 행해지는 동안 영정을 받쳐 든 상좌(제자) 스님은 내내 눈물을 흘렸다. 스님들에게도 죽음은 해탈이기 이전에 이별인가 해서 마음이 아려 왔다(속인의 깜냥으로 짐작하는 것이니 용서하시길).
가사 한 장 덮고 떠난 법정 스님
비구승의 경우이긴 하지만 출가한다는 것은 곧 윤회에서 비켜서는 첫걸음이기도 한 게 아닐까? 세세생생 나고 죽기를 계속하는 것을 윤회라 한다고 들었다. 살아 있는 무릇 모든 생명이 다 그렇듯 인간도 자식을 통해 거듭 나고 거듭 죽는다. 그러므로 자식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윤회의 고리 하나를 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겠다.
소유욕을 버린다는 것, 즉 무소유가 갖는 의미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악업을 지을 까닭이 없다. 악업을 안 지으면 윤회의 고리 또 하나를 풀어버리는 게 될 듯하다. 이 역시 스님이 된다는 것의 의미라고 혼자 멋대로 생각하고 만다(역시 불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만용이고 무지이겠지만…).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스님들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없어서 안 가지기는 오히려 덜 어렵다. 법정 스님은 1996년 당시 가격이 1천억 원으로 어림되었다는 대원각을 그 주인으로부터 시주 받아 이듬해 길상사를 열었다. 10년 동안이나 받으라거니 안 받겠다거니 씨름한 끝에 연 그 절에서 그는 단 하룻밤도 유한 적이 없었다고….
무소유의 철인(哲人)으로서 인류사적인 가르침을 남긴 소크라테스를 다시 떠올린다. 물론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가 이 방면에서는 더 이름을 알렸지만 소크라테스의 무욕(無慾) 또한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는 생전 씻지도 않고 맨발로 다녔으며 여름이나 겨울이나 속옷도 없이 거친 외투 한 벌로 지냈다.
"그의 생활은 검소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소크라테스가 필요로 하는 비용만큼 벌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지 의심스럽다." 제자 크세노폰이 '소크라테스 회상'(최혁순 역)에서 한 말이다.
"나한테 하등 필요치 않은 물건들이 참 많기도 하군!" 아고라를 걸으며 상점의 진열대에 놓인 수 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고 전해진다.(드니 랭동, '소크라테스와 아테네', 윤정임 역)
속인들이 이런 위인들의 삶을 흉내낼 것까지는 없다. 억지로 그런 상황에 떠밀려 들어간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굳이 사서 할 고생은 아니다. 욕구야말로 발전에의 유인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무소유 정신에 찬사를 보내고 그 덕을 기리는 것은 탐욕·과욕을 함께 경계하자는 뜻일 터이다. 그날 법정 스님의 법구를 따라가서 다비를 지켜본 사람들이 마음으로 다짐한 바도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말인데, 특히 수많은 추모객들 가운데 언뜻언뜻 TV 화면에 비치던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 길상사를 찾아 조문했다고 이 신문 저 방송에 소개된 높은 분들에게 각별히 주문할 것이 있다. 무슨 자격으로? 물론 국민된 자격으로!
무소유 흉내는 안 내도 좋지만
"제발이지 험하고 추한 싸움질 이제는 그만두시지요.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기리고자 그 자리에 갔던 분들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끝마다 나라를 위합네, 국민을 위합네 하지만, 자신이나 패거리의 몫을 챙기자고 악다구니하고 멱살잡이하는 때가 없지 않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음을 잊지 마시고요.
말이 난 김에 덧붙이지요. 만에 하나라도 매스컴에 얼굴 내기 위해 조문한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훗날에 오늘을 되돌아보기가 스스로 너무 창피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탐욕이 없으면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으면 서로 막말하면서 싸울 까닭도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무소유의 실천자는 못 되더라도 나라와 국민 사랑의 실천자는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