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후원하기 나의후원

보도

    • 10-03-19

    자칫 ‘무소유’마저 소유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이상면(뉴스천지 3.19)

본문

[편집인 칼럼]자칫 ‘무소유’마저 소유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2010년 03월 18일 (목) 22:17:03 이상면 편집인  lemiana@newscj.com

마치 태풍의 위력과 같은 큰 바람이 전국을 강타하고 지나갔다. 아니 지금도 거센 바람은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엔가 홀린 듯 우리의 생각이 빼앗기고 있다.


지난 3월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의 얘기다. 법정스님의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는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가 하면, 그동안 출간한 서적들은 ‘품귀’에서 ‘품절’로 바뀌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불교도뿐 아니라 종파를 넘어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 중심에 그가 남긴 ‘무소유(無所有)’ 정신이 있다.


평생을 신앙인으로 올곧은 길을 걸어오셨고, 입적하는 순간까지 이 시대가 간과해온 정신과 생각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고 뉘우치게 하신 스님의 삶은 참으로 존경과 애도를 함께 받기에 충분하다.


범인(凡人)으로선 가히 생각하기조차도 어려운 그 길을 스님은 묵묵히 본이 되어 걸어 왔고, 또 걸어온 대로 가셨으니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안타까워했고 또 그리워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다른 측면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여지는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무소유’ 사상이 우리에게 그토록 엄청난 충격과 감동으로 다가왔을까.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치관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현실이 낳은 단어이자 사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며, 소유 즉, 명예ㆍ권력ㆍ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욕심이 만연한 이 세태를 꼬집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소유할 것이 많은 이 세태에 대한 질타성 풍자적 표현이라면, 과거에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아무것도 소유할 게 없던 그 시절에도 ‘무소유’란 단어가 세인들의 가슴에 오늘날과 같이 과연 감동으로 와 닿았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우리가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 것은 곧 ‘무소유’가 꼭 따라야 할 진리(眞理)이기 때문이 아니라, 탐욕스런 이 시대를 질타하는 ‘시대의 몽둥이’란 점이다.


우리는 스님의 고행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무소유’의 정신을 종파를 넘어 바르게 깨달아 왜곡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소유! 정말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을 의미했을까. 그것은 아닐 게다. ‘무소유’란 분수를 넘은 욕심, 더 나아가 탐욕을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절대자(絶對者)는 만물을 우리에게 주셨다. 주셨다는 것은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필요악(必要惡)이 되지 않도록 분수에 맞게 소유하고 나누라는 경계의 말씀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는 뭘까. 원래 무소유란 종교적 용어로서 신앙의 도(道)를 통해 신앙의 참뜻을 깨달았을 때, 깨닫기 이전의 모든 생각과 가치관을 다 버리고 오직 깨달은 바 그 한 뜻을 향해 정진하는 신앙적 표현이며, 영적(靈的) 차원의 ‘무소유’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스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나아가 무소유의 영적차원의 의미와도 상관없이, 그저 우리의 관념대로 해석함으로써, 무소유의 본질을 벗어난 왜곡된 인식으로 인해 그 무소유마저 소유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세상의 삶에 있어서도 소유로 인해 누리게 되는 편안함 뒤에 정신이 치러야 하는 고통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나옹선사께서 남긴 시에서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냄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라며 세상적 무소유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예수께선 무소유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즉, 신앙의 목적 곧 천국을 발견하고 또 만났을 때 이전에 내가 가졌던 모든 생각과 가치관을 다 버리고 그 천국을 소유한다는 영적인 의미의 소유관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앙인의 삶이란 세파와 속세를 떠난 도피가 되어선 안 된다. 세파를 통해 신앙의 목적을 깨닫고, 세파 속에서도 세파에 물들지 않고 도(道)의 길을 걸어가며 또 함께 나누는 삶이 바로 ‘무소유’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