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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18

    법정 스님 무소유가 한국불교 희망이다 (법보신문 사설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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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무소유가 한국불교 희망이다

기사등록일 [2010년 03월 15일 13:07 월요일]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했던 법정 스님이 원적에 들었다. ‘법정다운 삶’이란 어떤 삶이었을까! 그 삶 속에 우리가 간직해야 할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스님의 법문을 두고 대중은 ‘꽃나무처럼 향기롭고 화살처럼 날카롭다’고 한다. 그 만큼 스님의 법문은 부드러우면서도 직설적이었다. 세상 번뇌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는 청량한 언어로 달래주었지만 흐트러져 있는 승가나, 무책임한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직격탄을 날렸다.


법정 스님은 불교계의 현실 참여가 전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1970년대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함은 물론 유신철폐 개헌 서명운동에 참여했으며 대중의 의식을 일깨웠던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법정 스님이 다시 송광사로 돌아오게 된 것은 당시 독재정권이 자행한 인혁당 사건을 목격하고서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18시간 만인 1975년 4월 9일 사형선고를 받은 8명에 대해 형이 집행되었다. 제네바 국제법학자협회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던 인권침해의 대표적 사건이었다. 법정 스님은 아무 말 없이 1975년 10월 송광사로 돌아와 불일암을 짓고 정진에 들어갔다. 당시 스님이 고뇌하고 감내해야만 했던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김영삼 정부 시절,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은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당시 기독교인인 김영삼 정부가 독립기념관, 경복궁, 창덕궁 연못의 연꽃을 제거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법정 스님은 각 현장을 직접 확인한 뒤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을 발표했다. 법정 스님의 법문 속에 ‘화살’이 있는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지가 충만했던 법정 스님은 에둘러 가는 법이 없었다.


불일암에서 명저 『무소유』를 선보인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도 번거롭다며 강원도로 발길을 돌렸다. 화전민이 버리고 간 오두막에 정착한 스님은 그 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관조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갔다. 길상사 회주로 주석하며 대중 법문을 하기 전까지 스님은 책을 통해 대중과 함께 호흡했다. 스님은 끊임없이 무소유를 강조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스님은 자연 속에서 건져낸 지혜도 전해 주었다. ‘연잎의 지혜’는 무소유 정신과 일치한다.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거리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자신이 감당할 만큼의 무게만을 갖고, 넘치면 비워 버리는 연잎의 지혜를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


현대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출가정신’이라 했다. 머리를 깎고 산이나 절로 가라는 것이 아니다.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는 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리고, 자신의 내면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마음을 텅 비우고 무심히 지켜보는 시간을 갖고, 실(實)로써 가득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허(虛)의 여유를 가져 보려 하는 게 바로 출가정신이요 버리고 떠나기다.


법정 스님은 그 누구보다 ‘삶 예찬론자’였다. ‘우주 전체의 조화가 곧 삶이요, 생명의 신비’라 한 스님은 ‘삶은 참으로 기막히게 아름다운 것, 누가 이런 삶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라 했다. 그러면서도 삶은 죽음이 있기에 빛날 수 있다 했다.


가을날 창호지를 바르면서 아무 방해받지 않고 만끽하는 오후 햇살을 보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 한 스님은 헌옷 하나 벗어 두듯 원적에 들었다. 생전에 써 보인 ‘유서’처럼 한국어를 사랑했던 법정 스님은 다시 한반도로 돌아와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을 것이다. ‘법정의 삶’은 곧 ‘무소유의 삶’이었다. 무소유를 통해 전한 맑은 향기는 세상을 정화해 갔다. 법정 스님이 일생동안 보여 준 그 삶을 우리도 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40호 [2010년 03월 15일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