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이 말하는 법정스님
"무소유·화합 참뜻 기리겠습니다"
생가터 알리는 표시판 설치라도
학자금 없어 눈물바람 가슴 아파
책 읽기 좋아하는 문학소년 기억
11일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광주·전남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스님의 지인들은 "무소유와 화합의 정신을 실천했던 큰 어른이자 정신적 스승이 떠나셨다"며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특히 법정스님의 출가 본사인 순천 송광사에서는 평소 시간날 때마다 들러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큰 스님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됐다며 하루종일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법정 스님의 고향 후배로, 어려웠던 청소년 시절 스님과 알게됐다는 임준문(74·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씨는 "법정스님을 '똑똑하고 책 좋아하는 재철이 형님'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스님이 목포상고 재학 당시, 스님의 작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선두리 여객선 매표소에서 표를 판매 했었다"면서 "당시 작은 아버지가 학자금을 제 때 지원해 주지 못했는지, 스님이 목포로 돌아가기 위해 찾은 매표소에서 눈물 바람을 할 때 가슴이 무척 아팠다"고 회상했다.
이어 "법정스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스님처럼) 똑똑한 형이 돈이 없어 학교를 못 다니면 안된다는 생각에, 몰래 매표소에 있던 금고에서 돈을 꺼내 쥐어주곤 했다"면서 "당시 액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달에 2번 정도 돈을 정산 할 때마다, 내 월급의 절반이 넘는 돈이 비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당시 목포와 여수, 완도 등으로 가는 이동 수단은 배가 유일했던 만큼 법정스님이 주말이나 명절 때면 승객들을 종선에서 본선으로 옮기는 일을 도와주곤 했다"면서 "스님의 작은 아버지가 마련해 준 초가집(목포시 대성동)으로 이사한 뒤로는 얼굴 보기가 힘들어 졌다"고 밝혔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김양채(51)씨도 "스님의 생가터는 우수영항구 울돌목에서 이순신 장군이 배 12척을 출발시킨 곳에서 무척 가깝지만,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면서 "일생을 '무소유' 정신으로 살아온 법정스님의 생가터를 알리는 표시판이라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법정 스님의 목포상고 동기동창인 김온근(79·광주시 남구)씨는 "법정스님은 자연과 책 읽기를 좋아하는 문학소년으로, 같이 독서회에 들어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독서회가 끝나면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즐겨 먹곤 했었다"고 기억했다.
스님의 출가 본사인 송광사에서는 큰 슬픔속에서도 13일 거행될 다비식 장소에 대한 청소작업, 의식에 사용될 각종 기구 등을 손질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종무소 관계자는 "입적 소식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지금은 사람이 별로 없지만 12일부터는 추모 인파가 대거 몰릴 것"이라며 "스님의 가르침이 워낙 커 신도들의 상심도 그만큼 클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호·해남=박혁기자
입력시간 : 2010. 03.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