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이 남긴 행복론
조억헌 광주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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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날짜 : 2010. 03.15. 00:00
“매화는 반개(半開)했을 때, 벚꽃은 만개(滿開)했을 때, 복사꽃은 멀리서 보았을 때, 배꽃은 가까이서 보았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며 인간사도 서로 멀리 두고 그리워하거나, 때로는 둘이 만나 회포를 풀 때가 아름답다고 설파한 우리 시대 큰 스승인 법정스님이 세수 78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산문집 ‘무소유’의 작가로 세간에 친숙해진 법정스님은 해남에서 태어나고 목포상고와 전남대 상과대를 마친 우리 지역의 큰 어르신인 까닭에 그를 잃은 우리 남도인의 슬픔이 더 크다.
살아 생전에 무소유 정신과 비움의 삶을 강조해 온 법정스님은 마지막 가는 길에도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써 달라”며 머리맡에 남아 있던 몇 권의 책마저도 스님에게 신문을 배달했던 사람에게 전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물질의 집착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던 법정스님에게서 우리 삶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행복이다. 자신의 행복에서 가족의 행복으로 좀 더 거창하게는 이웃의 행복까지 빌어 보는 것이 우리네 삶의 이유가 아니던가?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내일의 행복을 위해 이를 악물며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쓴웃음을 짓게 된다. 청소년들은 앞으로 들어갈 대학시험 준비로 꽃피는 오늘을 포기하고, 성인이 되어선 풍족한 노후를 준비한다며 정작 소중한 청춘을 저당 잡히며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삶의 현주소가 아닐까?
경제학적 통계에 따르면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제대국보다 아프리카처럼 기아에 허덕이며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해 더 만족하며 행복지수 또한 높다고 한다. 가지려고만 하는 우리 시대 자화상을 보면서 곱씹어볼 대목이다.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리해졌지만 정작 우리 내면은 그때보다 훨씬 빈곤해져 있지 않는가 하는 허전한 마음마저 든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결코 물질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행복의 비결은 결국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삶에서 가장 신비한 일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법정스님의 산문집 ‘무소유’를 두고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던 일화가 있을 정도로 법정스님은 우리 시대 대표적 작가이자 명문장가다. 필자도 지난해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그의 법문집 ‘일기일회(一期一會)’를 보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날 들을 반성한 적이 있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은 다도(茶道)에서 유래한 말로 차를 대접하는 주인과 손님 모두, 일생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의 만남을 소중히 여겨 정성을 다해 그 자리에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떠나가는 법정스님을 보면서, 지나간 어제와 오늘은 다시 만날 수 없듯이 생애 단 한번뿐일 이 찰나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매화꽃이 한창인 이번 주말에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을 송광사에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