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변 걸으며 법정 스님을 생각한다
2010년 03월 14일 (일) 18:24 광남일보
이해모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꺼억 꺼억 속울음을 터뜨렸다. 남한강가에 콘테이너 박스 2개를 갖다 놓고 4대강 사업이 중단될 때까지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는 수경스님께서 ‘생명의 강을 위한 기도문’을 읽어내려가면서 끝내 눈물을 훔치셨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하니 스님은 편안한 절집에 앉아있는 것이 오히려 너무도 불편하단다. 그래서 콘테이너에 의지해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알려내고자 지난 13일 남한강변에 여강선원(如江禪院)을 개원하였다.
이날은 바로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시어 송광사에서 다비식이 열리는 날이다.
종교를 넘어 모든 국민들의 시선이 ‘무소유’의 지혜를 일러주고 떠나신 법정스님의 마지막 가신 길에 함께하고자 송광사로 향할 때, 우리 활동가 몇 명은 경기도 여주 여강선원으로 향하였다.
십여 년 전에 처음 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 당시 신륵사에서 바라다보이는 남한강변은 평화로워서 이런 곳에 살면 참 좋겠다 라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수천년 동안 유유히 흘러내리는 강물의 물줄기를 끊고 보를 설치하기 위해 수십대의 포크레인이 강바닥의 모래를 파헤치고 있는 죽임의 터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강(江)은 원래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되어 있다. 그 강물은 조상대대로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면서 모든 사람들과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누고 고락을 함께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고, 누군가는 아프고 시린 마음 달래려 이곳에 달려와 마음을 녹이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받았을 그 강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현 정부는 ‘대운하’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막힘을 당하자 눈속임을 통해 ‘4대강 살리기’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4대강변에 수십개의 보를 설치하고 최단시일 내에 공사를 끝내기 위해 밤에도 환한 서치라이트를 밝히며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냉철히 따져보면 이런 현실 앞에 현정부의 잘못만을 꼽을 수는 없다. 우리들의 나태와 설마, 외면과 어리석음이 국토를 유린해가면서까지 4대강 사업을 진행하는 주춧돌이 되고 있음을 뼈져리게 반성해야 한다.
오직 경제적인 이익만이 모든 가치척도의 기준이 되어버린 냉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는 뭇 생명과 자연 앞에 죄업을 짓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냥 무관심하고 바람 스치듯 그냥 지나쳐 버린다.
수경스님은 이런 현실 속에서 수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다시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알리고 모든 시민사회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해내기 위해 현장으로 나오신 것이다. 이런 스님이 있어 참으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남한강변을 걸으며 법정스님 가시는 길을 생각해 본다. 원래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고, 돌아갈 때도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질 이 몸뚱아리인데 무지한 인간들은 온갖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자신과 인간을 병들게 하고 자연마저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 아무렇지도 않게 파괴하고 있다.
‘무소유’의 인간이 자연을 ‘소유’와 ‘착취’, ‘억압’하고 있다. 그 과보를 어떻게 감당해 내려고 그러는지 참담한 마음 금할길 없다.
"수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방방곡곡 이 땅이 근래에 와서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성찰을 잊은 개발에 의해 온 땅이 피 흘리고 신음하고 있다"며 대운하와 4대강 사업에 대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안타까워하시던 스님은 이제 한줌의 재로, 자연으로, 결국 ‘무소유’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가셨다.
이제 우리가 스님의 뒤를 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