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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17

    마음 밭 무소유 - 김애옥 (국민일보 3.15)

본문

[살며 사랑하며-김애옥] 마음 밭 무소유


2010년 03월 14일 (일) 19:40 국민일보


친구와 대화하던 중 파천황(破天荒)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당연히 알 줄 알았다는 표정의 친구는 천황을 깬 자가 파천황이란 말과 함께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해냄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글을 쓴다는 작가로서, 그리고 학생을 가르친다는 선생으로서 이 단어를 처음 접한다는 사실이 스스로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 나름 많은 어휘들을 알고 있다고 자부해온 사실이 부끄러웠다.


살면서 체득하는 직접 경험과 독서와 매체 등을 통한 간접 경험으로 많은 지식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 문자와 사실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교만한 지성인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지적 허영심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우리에게 생각과 감정을 변화하게 해주셨던 큰 별들이 근자에 들어 유독 많이 떨어졌다.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진정한 삶의 실천과 귀한 책으로 존경을 받아오시던 법정스님의 다비식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그분이 설파하신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라는 무소유의 행복론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물질의 무소유는 어느 정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끼던 십자가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며칠을 속상해하기도 하였지만, 비교적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내가 소유한 물질들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나를 떠나게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마음에 두었던 일을 마음에 두지 않은 일로 여기는 일은 내게 가장 힘들다. 자신이 경작하고 소유한 마음 밭, 누구에게 마음을 주고 나서 그 주었던 마음 자체를 떠나보내거나 거두는 것이 평생 수련해야 하는 고행 같기만 하다.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고 베푸는 친절이 최고의 영성지수라 하였고, 법정스님도 절 중에서 최고의 절은 ‘친절’이라고 하셨다.


내가 순전함으로 건네었던 그 친절한 마음을 상대의 반응이나 결과와 상관없이 기억조차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무소유가 늘 버거운 숙제로 남는다. 내 마음을 어떤 빛깔이나 형태로든 상대에게 전했는데, 이미 건너간 마음 그 자체를 무소유하기가 어렵다. 내 진정성을 꽃 피우고 인정받고 싶은 ‘소유’심이 평정심을 잃게 한다. 마음수련의 화두로 삼고만 있다. 법정스님의 글로 이런 마음을 표현하자면 늘 내 마음의 강물에는 파문이 일고 눈 자국에는 물기 어린 축축함으로 풀잎에 빗물 떨어지듯 초라하기만 하다.


눈밭을 뛰고 있는 토끼를 그렸는데 그게 왜 흰색밖에 안보이냐고 묻는다면 어찌 내가 답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겠냐만 중이 수녀를 만나자니 쑥스럽다며 인간적인 면도 거침없이 보여주신 법정스님의 글이 다시 한 번 비루한 내 영혼을 샤워시켜 주신다. 나를 채찍질하는 것도 나요, 나를 헹구어 주는 것도 나라고 말이다.


김애옥 동아방송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