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때로 우리를 더 깊어지게 합니다. 슬픔은 우리의 영혼을 순수의 자리로 더 가까이 가게 해줍니다. 그것이 슬픔이 가진 힘입니다.
법정 스님께서 '말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모든 책을 절판시키라 했다는 유지가 공개되면서 그 문제를 놓고 갈수록 시끄러워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애도의 기간입니다. 모든 논란을 접고 슬픔으로 문을 닫아 걸 시간입니다.
"깨진 종처럼 침묵하라."
언젠가 스님과 지방 여행 중에 어느 박물관에 놓인 깨진 종을 가리키면서 스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스님이 세상을 떠난 이 며칠, 우리 모두는 깨진 종과 다름 없습니다. 깨진 종이 소리를 내면 시끄럽기만 할 뿐입니다.
스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책 절판의 뜻을 전하셨다고 하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두말없이 그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길상사나 맑고향기롭게측에서는 거듭 언론에 이 사실을 발표할 것이 아니라 해당 출판사 발행인들을 불러 따듯한 이해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출판사 발행인들은 스님의 글과 사상이 널리 전해지도록 최선을 다해 오신 분들이며 스님과의 인연이 각별했던 분들입니다. 이 덧없는 절판 소동에서 그분들이 마치 이익과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로 오해받는다면 옳지 않으며 스님께서도 원치 않으시는 일입니다. 스님께서 살아계실 때 분명히 말씀드렸듯이, 저는 저의 이름으로 엮은 스님의 책 <산에는 꽃이 피네>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에 대해 아무 이의 없이 스님의 유지를 따를 것입니다.
어제 14일 밤, 비를 맞으며 스님의 유해가 길상사에 도착했습니다. 그 육신은 한줌의 재로 남았지만 아직 스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 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뭣하러 49재를 지내겠습니까. 그것은 아직 스님의 혼이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말의 세계를 떠나 오로지 침묵으로 존재하는 그분과 우리가 침묵으로 내밀히 대화할 시간입니다. 적어도 49재가 끝날 때까지, 우리 모든 논란을 접고 애도와 명상의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서귀포에서 마지막 겨울을 나시면서 저와의 대화 중에 스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사윤회의 사슬을 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불교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상기시키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생에 살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고 신세를 졌다. 다시 태어나 그 빚을 갚을 것이다."
그 말씀과 결연한 의지에서 저는 참된 보살의 면모를 보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병을 떨치고 일어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시면서도 늘 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어서 일어나, 그동안 병치레하느라 신세진 많은 사람들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법정 스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이 글이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저는 다음 주에 인도로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