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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23-04-28

    [불교신문] “세상에 나왔으니 밥값은 해야지” - 2014.08.29.

본문

“세상에 나왔으니 밥값은 해야지”

이금지 맑고향기롭게 광주모임 운영위원장 

부처님 법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부지런히 절에 다니기 시작한지가 60년이 넘었다. 친정어머니께서 아들을 낳기 위해 절에 다니시면서부터 절집과 인연이 되었다. 모태 신앙인 셈이다. 훌쩍 자라 도시로 나오면서 참다운 나의 종교생활이 시작되었다. 

매일 절에 다니면서 나의 신행 생활은 부처님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기 시작했다. 하루 일과를 기도로 시작하며 부처님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던 가운데 절에 함께 다니고 있었던 도반들과 적멸보궁 순례 길에 나섰다. 광주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밤을 꼬박 새워 백담사에 도착했다.

백담사에서 주먹밥으로 중식을 하고 오세암까지 거센 죽비 비를 맞으면서 걸었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준비해간 비옷을 입고 무섭게 흘러내려오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며 나와 일행들은 다함께 ‘관세음보살’ 정근을 했다. 봉정암 순례는 2박3일 일정이었다.

백담사를 거처 오세암에서 일박을 했다. 오랜만에 들뜬 기분으로 나선 일행들은 밤새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오세암 주지 스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봉정암으로 향했다. 길은 너무 험난했다. 이렇게 힘든 길을 무얼 찾아 가는 걸까.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너무 힘들어 해찰을 하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달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독경소리에 모두 함께 합장하고 기도가 시작되었다.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출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밥값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 나온 보람을 나눌 수 있도록, 사회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발원을 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철야정진을 했다.

미역국 한 사발에 아침밥을 말아먹고 서둘러 봉정암의 일정을 마치고 대청봉에서 신흥사 쪽으로 내려와 회향을 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살았다.

그런데 봉정암 부처님께서 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 같다. 다녀온 후 1997년 6월7일 법정스님께서 주창하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광주지부’를 별 어려움 없이 결성하였다. 슬로건이 ‘마음을, 세상을,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이다.

시작은 순조로웠으나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순수 후원금만으로 운영하다보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본부장님을 비롯해 여러 운영위원님들의 도움으로 지속적인 사업을 꾸려 올 수 있었다. 지금 나의 직책은 18년이 된 광주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운영위원장이다.

지금 비록 풍족하진 않지만, 독거노인 장애우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도시락 매일 100개씩 지원할 수 있는 후원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고령층과 저소득층들에게 1000원 점심 공양을 드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는 것 또한 봉정암에서 발원했던 그 뜻이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제2의 도약을 위해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 약간의 흔들림은 무얼 의미 하는 것인지 깊은 고뇌에 젖기도 한다. 이럴 때면 발원할 곳을 찾아야한다. 다가오는 초가을에 다시 한 번 봉정암 부처님을 찾아뵙고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을 해야겠다.

[불교신문3036호/2014년8월27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