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종교인이 바라본 평화 |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법정 스님과의 대화’모임
어른 없는 시대에 더욱 그리운 세 어른
이선종 교무 “오히려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이 시대에 종교 지도자들이 먼저 깨어나야 세상에 평화가 이뤄질 것이다. 세 분이 모범적으로 살다간 삶을 여기 모인 우리들이 과제로 삼아야 한다”
많은 것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다. 정보도 지식도…. 그래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도 길가의 돌처럼 혹은 물가의 물처럼 흔하고 흔하다. 그러나 마음이 평화를 잃고 갈 길 모를 때, 사회가 갈등과 분열의 골로 깊이 파일 때 길을 물을 어른들은 많지 않다.
어른이 없는 시대라 더욱 그리운 어른들이 있다. 강원용 목사,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2006년, 2009년 그리고 2010년 차례로 우리 곁을 떠나신 세 분은 비단 그 종교를 믿는 종교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고 가르치시고 지혜를 나누어 주셨다.
지난 6월 30일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참 종교인이 바라본 평화-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법정 스님과의 대화” 모임이 있었다. 세 분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인 김수환 추기경연구소, 대화문화아카데미, 맑고향기롭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모임에는 무덥고 습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500석에 가까운 꼬스트홀이 가득 메워질 만큼 많은 분들이 오셨다. 이날 모임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는 박명숙 댄스씨어터의 ‘평화의 길잡이’라는 축하 무용으로 시작됐다. 불안한 삶, 고독한 삶에서 헤매는 인간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평화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춤사위를 통해 전해졌다.
이어서 전 조계종 총무원장인 송월주 스님이 강원용 목사를, 대한성공회 김성수 대주교가 김수환 추기경을 그리고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김종명 미술관장인 최종태 선생님이 법정 스님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종교에 상관없이, 종교를 넘나드는 이른바 ‘종교 간 크로스오버’의 시간이었다.
예의 그 카리스마 있는 음성과 눈빛으로 대화의 필요성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말씀하시던 강원용 목사의 동영상 상영을 마친 후 무대에 올라온 송월주 스님은 강원용 목사를 기독교계의 거목이자 우리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로 기억했다. 특히 송월주 스님은 신앙인 이전에 참다운 인간이 되기를 고민했던 강 목사의 종교관이 성경 한 글자 한 글자 모두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됐다고 주장하는 ‘축자영감설’을 지양하고 그와는 반대되는 ‘목적영감설’을 추구하여 인습의 타파를 시도한 모습에서 잘 나타나 있다고 했다. 또한 강원용 목사를 그의 호인 여해(如海)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바다처럼 넓고 깊은 삶을 살면서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언론 분야에서 우리 사회가 절실히 요구하는 화해의 씨앗을 심은 인물로 소개했다.
이어 어린이들의 율동을 따라하는 자애로운 모습으로 참석한 사람들에게 미소를 머금게 한 ‘바보’ 김수환 추기경의 동영상이 상영됐고,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임에 참석한 김성수 성공회 대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회상이 이어졌다. 김성수 주교는 40년 전 처음 추기경을 뵀을 때를 회상하며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서민적이면서도 고결한 품격을 지녔던 분으로 기억했다. “그분은 참 거침이 없는 분이셨어요. 남들이 말려도 당신이 가서 위로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셨죠. 남들에게는 아주 보잘것없는 곳이라도, 바로 그 곳이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라 하여 절대 망설이지 않으셨어요.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춤도 추시고, 유행가도 부르셨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면 같이 우시기도 하셨어요. 아무리 큰 세력이라도 잘못된 일은 잘못이라고 큰소리로 꾸짖기도 하셨죠.” 김성수 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이 보여준 삶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며 무대를 내려왔다.
세 번째로는 법정 스님의 모습을 담은 ‘텅 빈 충만’이 상영됐다. “집도 버리고 떠난 중들을 믿지 마라”고 설법(?)하시는 법정 스님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상은 말년에 힘들어 하시는 모습, 그러면서도 살아 있을 때 나누어야 함을 강조하시는 엄격한 스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법정 스님 생전에 깊은 사귐을 가졌던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교수는 글도 잘 쓰고 책도 많이 읽으셔서 말하기가 편한 법정 스님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종태 교수는 전혀 번역 냄새 없이 법구경을 번역한 법정 스님에 대해 문장으로나 번역으로나 천재라고 칭하며 법정 스님의 글이 가진 매력은 정신의 매력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날씨는 청명하니 좋은 계절이었습니다. 어떤 풍채 좋은 젊은 스님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시면서 큰 소리로 ‘저 그만 내려갈랍니다. 큰 스님 절 받으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법정 스님이 벌떡 일어나 만류를 하시면서 ‘나 큰스님 아닙니다’ 하시면서 맞절을 하시는데 내게는 그 풍경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최종태 교수는 김수환 추기경과 더불어 법정 스님을 종교의 길에서 만난 스승으로 칭하며 두 분을 내리 하늘로 떠나보낸 것을 무척 애석해했다.
▲ 19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의 ‘종교간 대화’ 모임의 법정스님(왼쪽에서 셋째)과 강원용 목사(넷째).
이어 이어진 2부에서는 미국 유니온신학교 현경 교수의 사회로 이선종 교무(원불교 중앙중도훈련원장), 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청 사목국 차장), 도법 스님(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이정배 교수(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의 대담이 ‘평화를 위한 종교 간의 어울림’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어디서나 경쾌함과 특유의 매력을 자아내는 현경 교수는 “과연 우리 사회에 평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다소 도발적인 첫 질문을 대담자들에게 던졌다. 이에 대해 특히 이선종 교무는 “오히려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이 시대에 종교 지도자들이 먼저 깨어나야 세상에 평화가 이뤄질 것이다. 세 분이 모범적으로 살다간 삶을 여기 모인 우리들이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한편 이정배 교수는 각 종교 안에 평화가 없는 것이 실상이라고 하며 거짓된 평화를 진짜 평화로 만들기 전에 종교 자체의 통렬한 자기반성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정된 시간을 30분 이상 넘겨 종교와 평화에 대해 진지한 대담이 이어졌고, 청중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것으로 대담을 마무리했다.
아마도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법정 스님 세 분이 당신들의 이름으로 모임을 여는 것을 아셨다면 모두 “말아라” 저어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 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분들의 말씀과 하신 일을 거울삼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 마련한 이번 모임은 어른이 없는 시대라 더욱 그리운 세 분을 그리며, 생전에 종교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셨던 세 분의 뜻을 다시 생각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2013 여성신문의 약속 - 여성이 힘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142호 [문화] (2011-07-11)
유영근 / 대화문화아카데미 기획연구실장, 미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