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박질하는 종교인들, 강원용·김수환·법정을 봐라
뉴시스| 기사입력 2011-07-03 08:01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한국은 다종교 사회이면서도 종교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였다. 하지만 최근 일부 개신교인들의 타 종교, 특히 불교 폄하행위로 인해 종교 갈등이 사회문제의 하나로 비화할 조짐이다.
이를 안타까워 하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계 인사들이 힘을 합쳐 종교 평화를 희망했다. '참종교인이 바라본 평화-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법정 스님과의 대화'에서다.
개신교 강원용(1917~2006) 목사, 천주교 김수환(1922~2009) 추기경, 불교 법정(1932~2010) 스님은 각기 신앙의 대상은 달랐지만 생전 상호존중과 화해, 상생의 만남을 해옴으로써 본인의 종교는 물론 타 종교인에까지 귀감이 됐던 인물들이다.
강 목사는 "불교와 기독교는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다르다고 하여 꼭 등을 돌리고 싸워야만 할까.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으로 철저히 살아가고, 불교도는 불교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함께 도울 일은 있어도 싸울 일은 없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 타 종교에 대한 내 생각이다"고 역설했다.
김 추기경은 "자기 중심적으로 감싸고 있던 자아의 두꺼운 모든 껍질을 깨고 거기서 해방돼야 남을 향하는 사람, 남을 향해 열린 사람, 남을 품어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즉 참된 인간이 된다. 그래야 참으로 그리스도 신자다운 신자, 그리스도다운 사람이 된다"고 강조했다.
법정 스님은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한다. 꼭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고 따뜻한 말을 나눈다든가, 아니면 시간을 함께 나눈다는가,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와의 유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누는 기쁨이 없다면 사는 기쁨도 없다"고 설파했다.
이 같은 세 사람의 정신과 뜻을 각각 이어 받은 천주교의 김수환추기경연구소, 불교의 맑고향기롭게, 개신교의 대화문화아카데미(옛 크리스천아카데미)가 함께 종교 갈등이 불거지는 세태를 경계하고, 종교 평화를 모색했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송월주(77) 스님이 강 목사, 성공회 김성수(81) 대주교가 김 추기경, 길상사 관음상을 조각한 천주교 신자 최종태(79) 서울대 명예교수가 법정 스님을 향한 그리움을 전했다.
월주 스님은 "5년 전 당신의 소천 소식에 '가름'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에 경책의 죽비를 내려칠 어른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가슴아팠다"며 "그러나 당신이 생전에 강조한 '창조적 통합'과 '대화를 통한 화합'의 정신은 떠나보낸 슬픔과 함께 우리 마음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기독교의 사명은 세상을 기독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화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크리스천이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된 것이라는 생전의 육성이 새삼 귓전을 울린다"면서 "호 여해(如海)에서 보듯 당신은 바다처럼 깊고 넓은 삶을 살았다. 우리 사회가 절실히 요구하는 화해의 씨앗을 심었다. 1965년 설립한 크리스천아카데미는 민족의 선지자로서 종교간의 폭넓은 대화를 촉발한 개가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어느 편이 절대선이고 반대편은 절대악이란 사고방식은 아집과 몰이해의 산물이다. 상대방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를 알 수 있게 되고, 거기에 나를 비춰보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깨우치게 마련"이라며 "자신이 믿는 종교가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고 있다면, 스스로 먼저 사랑이 돼야 하고, 자비가 돼야 한다. 나의 신앙과 신념을 고수하기 위해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의 생명과 행복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참다운 순교다. 강 목사의 신조 역시 이와 결코 다르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참된 종교의 길이요 인간의 길이기 때문이다"고 짚었다.
김 대주교는 "처음 김 추기경을 뵈었을 때가 마흔 살쯤 됐을 때였다. 이제 나도 벌써 어느덧 80이 넘어 버렸으니 약 40년 전이다"고 첫 만남을 추억했다.
"김 추기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이 영향을 미친 분"이라며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군사정권 하에서 통치하던 권력 핵심부터 다 쓰러져가는 청계천 구석에 버려진 아이들과 철거민들 그리고 소록도에 있는 한센병 환자들, 에이즈 환자에 이르기까지 세상 어느 한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난지도에서, 또 동일방직 여공들의 단식 농성장에도 추기경은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 분은 거침이 없었다. 남들이 말려도 당신이 위로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남들에게는 아주 보잘것없는 곳이라도, 바로 그곳이 예수가 있는 곳이라 해 절대 망설이지 않았다"면서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춤도 추고, 유행가도 불렀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면 같이 울기도 했다. 아무리 큰 세력이라도 잘못된 일은 잘못이라고 꾸짖었다"고 회고했다.
더불어 "김 추기경은 천주교라는 교단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성공회와 교류하려고 했고, 성공회 뿐만 아니라 다른 교단, 다른 종교와도 소통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그 분의 뜻을 되새기고 제대로 기리려면 아픔, 슬픔, 상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해야될 것이고, 교단과 종교를 넘어서 모든 종교가 서로 교류하고 친교하면서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이 사회에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교수는 "내가 관음상을 길상사 마당에 만들게 된 것은 법정스님이 해보자 해서 된 일이 아니다. 내가 오랫동안 생각한 일이고 평소에 만들고 싶다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했다. 오래된 일"이라면서 "천주교 신자로서 김 추기경을 만났을 때 언젠가 '내가 관음상을 만들면 천주교회가 나를 파문하지 않을까요' 그랬더니 추기경은 아니라면서 '일본 천주교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할 때 관음상을 놓고 했다. 어디 안 보이는 데다 십자 표시를 했다'는 얘기도 했다. 뒷날 동화작가 정채봉씨 등이 법정 스님 만나서 얘기가 돼 일이 급격히 진행된 것"이라고 전했다.
"법정 스님을 1999년에 만났는데 이렇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일체 없었고, 내가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을지 궁금한 표정조차 없었다. 신기한 것은 그런 스님의 마음은 길상사 마당에 세워놓고 점안식을 하던 날도, 그 후로 돌아가시기까지도 일체 없었다는 점이다. 나도 일체 걱정이 없었고 불교신도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염려 등을 전혀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서로 마음을 믿었기로서니 그럴 수가 있는가 정말 감사한 일이고 어찌 생각하면 기적같은 일이 아닐까도 싶다"고 털어놓았다.
"2000년 4월 관음재날 점안식에서 나는 땅에는 경계가 있지만 하늘에 무슨 경계가 있는가. 스님은 가고 빈 마당에 지금도 서있는 나의 석조관음상은 조금은 외롭게도 보이지만 지금도 열심히 웅변하고 있다. 종교간의 문제에 대해, 현대의 종교미술에 대해, 불교 미술의 역사에 대해 끝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장례는 그 분들이 한평생처럼 꽃 한 송이 없는 명동이고, 길상사였다. 전체가 한 송이 하얀 꽃 같이 신선했다. 두 분이 없는 공백이 얼마나 더 갈지 사회가 심란할 적마다 생각나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두 분의 죽음을 생각하면 죽음 저 너머에 무언가 있는 것 같다. 끝이 아니다 하는 것을 나는 똑똑히 봤다. 두 분은 가면서 세상에다 '희망'이란 큰 선물을 놓고 갔다"고 밝혔다.
6월30일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린 행사에는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각 종교 지도자,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해 세 거인의 정신을 되새기며 종교 평화를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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