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인터뷰] 이해인 수녀, 스님을 말하다
‘중이 수녀 찾아간다는 게 왠지 쑥스러웁디다’ 며 웃던 그분 …
“구름 수녀님!” 이제 자유의 몸으로 돌아간 법정 스님은 평소 이해인(65·사진) 수녀를 이렇게 불렀다. 이 수녀의 세례명이 ‘클라우디아’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클라우디아’에서 영어 단어 ‘클라우드(Cloud·구름)’를 떠올렸다. 그만큼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의 친분은 두텁다. 출가자로서, 작가로서, 수도자로서 공유점이 적지 않다. 법정 스님은 불교계의 가장 대중적인 아이콘이고, 이 수녀는 ‘가톨릭의 가장 대중적인 아이콘’이다. 그래서 이해인 수녀에게 법정 스님의 추모 인터뷰를 청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1976년에 출간됐죠. 어디서 어떻게 읽으셨나요.
“76년은 제가 종신서원을 했던 해죠.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금방 읽었어요. 당시 너도 나도 그 책을 읽으려고 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읽고 나서 소감은요.
“저 역시 수도자 신분이다 보니 내용들이 다 맘에 와 닿았죠. 책의 ‘난(蘭) 화분’ 이야기를 읽고 개인적으로 집착하기 쉬운 취미는 안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법정 스님과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국어교사였던 제 친구가 송광사 불일암의 주소를 줬어요. 제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꼭 한 권 보내라고 권하더군요. 책과 함께 편지를 드렸는데 즉시 답신이 왔어요. 그리고 78년쯤 부산 광안리의 우리 수녀원(성베네딕도 수녀원)을 방문하셨어요. 그 뒤에 수녀원에 하루 묵어가신 적도 있고요.”
-기억나는 풍경이 있으세요.
“수녀원에 오셨을 때 제가 광안리 바닷가를 함께 걷자고 했죠. 순순히 따라 주셨어요. 제가 주웠던 조가비를 드리니 주머니에 넣으셨어요. 비구 스님과 수녀가 바닷가를 걷자니 좀 쑥스러우셨던 것 같아요. 그 뒤에 불일암에서 어느 보살님과 제가 하루를 묵은 적이 있어요. 보살님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고 저를 순천까지 데려다 주시라고 부탁하고 갔어요. 몇 시간 적막한 산중에서 스님과 단둘이 있으려니 어색했죠. 스님도 계속 헛기침을 하시며 절더러 포도를 씻어오라 하시더니 마치 성난 사람처럼 집어 드시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마 그 시절엔 스님도, 저도 젊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부산엔 종종 오셨나요.
“부산에 자주 오시라고 하면 ‘거 참 중이 수녀 보겠다고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왠지 쑥스러웁디다’라며 너털웃음을 짓곤 하셨죠. 자주 뵙진 못해도 늘 든든한 버팀목 같은 분이셨어요.”
-법정 스님은 김수환 추기경과도 친분이 무척 두터우셨죠. 김 추기경 선종 1년여 만에 법정 스님도 입적하셨어요.
“정말 슬픕니다. 성당에 앉아 있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86년도 쯤인가…, 제가 유명세 때문에 괴로워할 적에도 법정 스님은 제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오늘은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피카소의 ‘전쟁과 평화’란 그림엽서를 한참 들여다 봤어요.”
-‘시인 이해인’이 보는 ‘수필가 법정’은 어떠합니까.
“그 분의 글은 한마디로 시원한 동김치(동치미) 같아요. 읽을수록 감칠 맛이 납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어쩜 이렇게 하실까?’하고 감탄할 적이 많죠. 개인적으로 저는 『영혼의 모음』과 『서있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수도자 이해인’이 보는 ‘수행자 법정’은 어떤가요.
“어찌 보면 좀 냉정하리만치 철두철미한 분으로 여겨졌어요. 그러나 실은 속정이 많은 분이셨죠. 타 종교를 이해하는 폭도 넓으시고, 늘 책을 가까이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이셨죠.”
11일 오후 1시10분 병세가 위독해진 법정 스님이 두 달째 입원 중이던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나와 성북동 길상사로 거처를 옮겼다. 상좌들과 의료진이 침대에 누운 법정 스님을 구급차에서 내려 길상사 주지실로 옮기고 있다. 눈물을 글썽이던 50여 명의 길상사 신도들이 법정 스님을 향해 합장하고 있다. 법정 스님과 대중이 만나는 마지막 모습이다. 40분 후에 법정 스님은 입적했다. [백성호 기자]
-법정 스님 하면 ‘무소유’가 떠오릅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에서도 ‘무소유의 영성’은 각별한 의미가 있지 않나요.
“‘무소유’는 말로 강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무소유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었을 적에야 비로소 가능한 경지인 것 같습니다. 진정한 겸손과 사랑이 없는 무소유는 공허할 뿐이죠. 때론 훌륭한 일을 하면서도 영적 우월감에 빠질 수 있고, 때론 자기 방식의 무소유를 강조하며 남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죠. 이 길은 참으로 큰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법정 스님 위중 소식을 듣고 성당에서 기도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스님을 아는 다른 수녀님들도 같이 기도를 했을 겁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잘 선종(열반)하실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장례식도 하지 말고, 다비만 조촐히 하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안 나오네요. 여러 사람에게 폐 안 끼치고, 번거로운 절차를 피하고, 극히 단순하게 하라는 메시지를 남기신 거잖아요. 당신의 평소 성격 그대로의 유언으로 여겨집니다.”
-마지막으로 이 거대한 자연의 품으로, 생명의 품으로 돌아가신 법정 스님께 수녀님께서 보내시는 작별인사를 듣고 싶습니다.
“스님께선 이젠 정말로 스님의 본래 뜻대로 완전한 무소유가 되셨네요. 스님께서 그리고 꿈꾸시던 정토에서 부디 행복하세요. 스님께서 그토록 좋아하셨던 ‘어린 왕자’처럼 별나라에 가시거든 종종 꿈에라도 잠시 오시어 더 아름답게 사랑하는 법을, 길들이는 법을 일러주세요. 길들인 것과의 이별이 쉽지 않은 우리에게 잘 이별하는 법도 가르쳐 주세요.”
글,사진=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