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그대로 다비, 사리도 찾지 말라”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입력 : 2010-03-11 18:20:03ㅣ수정 : 2010-03-12 02:14:35
ㆍ법정 스님의 삶…평생 몸소 실천한 ‘무소유’ 맑고 향기로운 글로 남겨
ㆍ풍요하지만 팍팍하게 사는 현대인들 정신적 스승으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됩니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이 2009년 4월19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법회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법문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무소유 정신과 삶’을 상징하는 법정 스님은 무소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산문집 <무소유>에서 이렇게 밝혔다. 스님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그다지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은데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불행해진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또 소유에 대한 집착은 지구환경을 망가뜨리고, 인간의 가치마저 떨어뜨려 ‘모든 존재가 도구화’되는 현대의 병폐를 낳는다고 말했다.
스님의 ‘조금 아쉬운 듯 가지는’ 무소유의 철학은 ‘단순하고 간소한 삶’ ‘절제의 미덕에 기반을 둔 검소한 생활습관’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갖고 결국 조화로운 삶을 꾸리게 한다. 스님은 “단순하고 간소하게 사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삶”이라며 “우리의 삶마저도 ‘소유’가 아니라 그저 순간순간의 ‘있음’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라’”고 설파했다.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은 스스로의 말과 글처럼 일생을 청빈한 무소유, 단순하고 간소한 삶을 살았다.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며 존경받는 이유다.
불일암과 강원도 산골짝 화전민이 남긴 오두막에서 홀로 지내며 수도해온 스님의 삶은 더 가지지 못해 안달하고, 더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우리 모두에게 매서운 죽비 그 자체였다. 현란한 말이 넘치는 세상에서 스님의 가난한 삶은 종교를 뛰어넘어 모두에게 맑고 깨끗하게 살아가라는 감로수였다.
스님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으며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진리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쌍계사·해인사·송광사 등의 강원·선원에서 수행을 한 스님은 탄탄한 경전 공부와 뛰어난 문장력으로 동국역경원 역경위원·불교신문사 주필·송광사 수련원장·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의 소임을 맡았다. 서울 봉은사에 주석하던 75년에는 군사 독재정권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집행에 충격을 받고 전남 순천 송광사로 내려간다. 그리고 송광사 뒤편에 불일암을 짓고, ‘이 시대 삶의 교과서’라 불리는 <무소유>를 펴냈다. 잇단 저서들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이 자주 찾아들자 스님은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문명의 이기가 없는 강원도 산골오지로 떠나 홀로 수행자로서의 삶을 꾸린다.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청정한 글은 수행과 깨달음의 결과물이었다. 스님에게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 방편이자, 석가모니 부처의 사상을 살아있는 언어로 전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동안 펴낸 <무소유>와 산문선집 <맑고 향기롭게>,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산에는 꽃이 피네>, 법문집 <일기일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등 20여권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팍팍한 일상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은 정신적 휴식에 목말라했고, 스님의 글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법정 스님은 세상나들이 때마다 마음과 세상,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며 살자는 뜻을 강조했고, 시민운동단체인 ‘맑고향기롭게’가 결성됐다. 김영한 여사로부터는 요정으로 유명했던 ‘대원각’을 시주받아 97년 길상사로 개산을 했다. 스님은 길상사에서 정기적으로 대중법회를 가졌고, 종교간 화합에도 관심을 둬 명동성당 등에서도 강연했다.
‘다비준비위원회’ 측은 이날 “스님께서는 번거롭고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말라”며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 말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평소 승복을 입은 그대로 다비하고, 사리도 찾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간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하셨다”고 덧붙였다.
법정 스님은 떠났지만 가장 본질적인 삶을 살며, 수행의 결정체로 남긴 맑고 향기로운 법문과 글은 영원할 것이다. 스님의 말처럼 글은 “자기 자신의 삶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자, 누구나 글을 통해 자신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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