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후회없이 살려면 마음을 활짝 열어야"
6개월 침묵 깨고 세상으로 나온 법정스님
기사입력 2008.04.21 07: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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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바로 이 순간 나를 비워야만 마음을 제대로 쓸 수 있고, 모든 인간관계가 잘 풀릴 수 있습니다."
긴 침묵을 깨고 불교계 어른 스님이 세상으로 나왔다. `무소유` 저자이자 서울 성북동 길상사를 창건한 법정 스님이 20일 따스한 봄 향기처럼 향기로운 법문을 들려줬다. 지난해 10월 가을법회 이후로 외부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터라 법정 스님 모습을 보러 길상사에는 초파일을 연상시키는 구름 인파가 몰렸다.
법정 스님은 "이 몸을 70여 년 동안 끌고 다니다 보니 이상이 생겨 정비공장에 갔다왔다"며 "여전히 천식이 있지만 이렇게 산하 대지가 초록에 물든 눈부신 봄날에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이 몹시 기쁘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때 50㎏이 안 나갈 정도로 야위고 병세가 심각했음을 털어 놓은 법정 스님은 "부품(내 몸)을 수리하면서 느낀 소감은 때가 되면 다 죽는다는 것과 죽을 병이 아니라면 앓을 만큼 앓으면 자연스럽게 낫는다는 것"이라며 "주위 모든 분들이 고맙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에 그날그날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야 한다"며 "후회없이 사는 방법은 자기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정 스님은 `용심(用心)`, 즉 마음을 제대로 쓰는 법을 강조하면서 "달마 스님은 `(마음이)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여도, 마음이 뒤틀리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구나`라고 하셨다. 용심을 제대로 하려면 살아 있는 이 순간 마음을 비워야 한다"며 "사바세계에 어찌 어려운 일이 없겠는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법정 스님은 "잘살고 못사는 문제는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다. 용심을 잘하면 내 마음이 열리고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하루 인생이 학교"라고 전제한 후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배운다. 순간순간 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활짝 열면 모든 이웃과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은 최근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며 개탄했다. 어린이를 아무 이유도 없이 죽이는 행위는 과거 농경사회에선 찾아 볼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또 현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법정 스님은 "이 땅은 수많은 생명체가 어울려 사는 곳이다. 한두 사람 생각으로 파괴해선 안 되는 곳"이라며 "조상대대로 내려온 영혼이자 뼈와 살인 이 국토를 경제논리로 유린하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라고 쓴소리를 했다.
이어서 법정 스님은 "뉴타운 공약으로 국회의원이 된 행위는 국민을 기만한 비열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 스님은 1955년 통영 미래사에서 입산 출가했다. 은사는 효봉 스님이고 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화상을 강주로 대교과 졸업하였으며 이후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했다. `수선안거`란 스님들이 선(禪)을 수련하기 위해 일정 기간 한곳에서 정진수행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밖에도 대한불교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역임했고 1994년에는 순수 시민운동인 `맑고 향기롭게`를 발의해 이끌고 있다. 1997년 12월 길상사를 창건해 회주직도 사양하고 큰어른으로 남아 있다. 특히 주옥같은 저서로 유명한데 `무소유` `영혼의 모음` `말과 침묵`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등이 있다.
[문일호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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