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길상사 가을법회서도 ''용서'' 화두로 설법
[세계일보] | 기사입력 2004-10-17 22:54 | 최종수정 2004-10-17 22:54
“자비심이 부처이고, 하느님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거기에 신앙생활을 하는 뜻이 있습니다.”
법정(法頂·72·사진) 스님이 17일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 극락전에서 열린 가을 법회에서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용서’ 를 재차 강조했다. 스님은 “지난 4월에도 용서를 이야기했는데, 여러분은 그동안 얼마나 용서를 실천했는가”라고 묻고는 “용서로 마음 속에 스며있는 독(毒)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정 스님이 이날 용서를 강조하기 위해 인용한 것은 최근 간행된 달라이 라마의 대담집 ‘용서’(오래된 미래)에 실린 일화였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탈출할 때 티베트에 남는 바람에 중국 감옥에서 18년 동안 감금당해 고초를 겪은 한 스님을 만났다. 긴 세월 동안 변치 않는 스님을 보고 달라이 라마가 “두려웠던 적은 없었냐”고 묻자 그 스님은 “나 자신이 중국인을 미워하게 될까봐 가장 두려웠다”고 대답했다.
법정 스님은 이 사례를 인용하면서 “내가 그 처지였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 같아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스님은 또 “땅을 딛고 사는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땅에서 자비와 용서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사는 스님은 대통령 탄핵 건으로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던 지난 4월에도 ‘용서’를 화두로 꺼내들었다.
스님은 1년에 단 두번뿐인 대중법문의 올해 주제를 모두 ‘용서’에 할애한 셈이다. 스님은 “인간은 때가 되면 누구나 자신의 일몰(日沒) 앞에 서게 되는데, 그 전에 맺힌 것을 풀어서 자유로워져야 된다”며 “이 좋은 가을날 열린 세상에서 열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법문을 끝맺었다.
법정 스님은 지난해 12월 길상사와 봉사단체인 ‘맑고 향기롭게’의 회주(會主·법회를 주관하는 승려)직을 내놓고 1년에 두번만 법회를 갖고 있다. 이날 법회에는 1000여명의 신도가 몰려 극락전 앞을 가득 메웠다.
정성수기자/hul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