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남의 허물을 들추지 말고 용서하라"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4-04-18 13:51 | 최종수정 2004-04-18 13:51
(서울=연합뉴스) 서한기기자= "남의 허물을 감싸주고 너그럽게 포용하며 용서하
십시요. 용서는 사람을 순식간에 정화시키고 사랑과 이해의 문을 활짝 열어줍니다."
법정(法頂.72)스님이 18일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 극락전에서 대중법회를
가졌다.
지난해 12월말 10년째 이끌던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의 회주(會主.법회를 주
관하는 승려)와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인 길상사 회주를 동시에 내놓고 무소유
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며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길상사에서 대중법회를 가지기로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길상사 지장전 건립 착공식을 겸해 열린 이날
법회에는 1천여명의 불자들이 참석해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법문에 빠져들었다.
법정스님은 먼저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겨울동안 안으로 응축했던 진액을 마
음껏 뿜어내며 온천지에 꽃을 피우고 있는 찬란한 봄을 노래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
었다.
법정스님은 꽃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아름다운 꽃과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하는 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인간사도 마찬가지라며 수행자의 경우는
특히 환상을 갖고 들뜬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실망할 수 있다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경계했다.
법정스님은 사람도 꽃이나 나무처럼 철따라 새롭게 태어났으면 좋겠다며 `용서'
를 주제로 한 이날 법문을 30여분간에 걸쳐 본격적으로 펼쳤다.
법정스님은 한 제자가 평생 수행하면서 교훈으로 삼으며 살아갈 한마디를 묻는
물음에 대해 `그것은 용서'라고 가르쳤다는 한 스승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남의 잘못
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용서는 인간사회의 가장 으뜸가는 미덕이라고 말했다.
"물론 선의의 충고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남의 허물과 잘못을 낱낱이 들추어내
고 꾸짖는다고 고쳐지는 게 아닙니다. 도리어 마음의 상처만 남기게 됩니다. 남의
결점이 눈에 띌 때는 내 스스로는 허물이 없는지, 자기 자신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
가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우리 사회에서 용서의 미덕이 사라지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법정스님은 옛날 중국 초나라 장왕이 한 신하의 잘못을 용서하는 관용을 베풀어
이 신하가 목숨을 바치는 용기로 진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겨 절체절명에 빠진 초나라
를 구한 일화를 들려주며 용서는 위기에 처한 국가도 살려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온세상이 반대하는 가운데서도 대량살상무기
를 핑계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정의롭지 못한 업를 지었는데, 언젠가는 그 과보
(果報)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법정스님은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다만 내 자신이 지은 허물만 보라"는 법구
경의 말씀을 두세차례 인용하며 언제 어디서나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그 누구의
허물도 들추지 말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아물려는 상처를 건드려 덧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허물을 추궁하는 것은 아
무 가치없는, 원한만 사게 되는 일입니다. 남에게 불행을 줄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불행해집니다. 끝내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돼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하게 됩니다. 지
나간 일은 전생의 일이기 때문에 들추어내지 마십시오. 용서가 있는 곳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법정스님은 허물을 들추는 것은 업을 짓는 것이라며 죽을 때까지 영혼의 그림자
처럼 따라다니는, 흔히 불교에서 육도윤회라고 부르는, 시작도 끝도 없는 업의 그물
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람은 맺힌 것을 풀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차례가 오면 세상을 떠나게 마
련입니다. 이 때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인생의 종점에서 용서 못할 일은 없
습니다. 맺힌 것을 풀지 못하면서 다음 생애로 이어집니다. 그 사람의 처지에 서보
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바로 이해할 수 없으며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먼저 생
각해야 합니다. 한쪽만 옳다고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법정스님은 용서를 하면 상처를 치유하게 되고 그러면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
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며 사람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
다.
법정스님은 끝으로 자존심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이 눈부신 계절에 맺힌 것을 오
늘 이 자리에서 모두 풀어 버리라며 "나머지 이야기는 저보다는 눈부시게 피어나는
나무한테 들으십시오"라고 말했다. <사진있음>
shg@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