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산문집 ‘홀로 사는 즐거움’낸 法頂스님
동아일보| 기사입력 2004-06-03 18:24 | 최종수정 2004-06-03 18:24
[동아일보]
‘촛불을 끄고 벽에 기댄 채 개울물 소리에 귀를 맡기고 있으면 맑고 투명한 이 자리가 정토(淨土)여, 별천지(別天地)이다. …… 좋고 좋구나. 소리 없는 소리가 들린다.’(72쪽)
법정(法頂·72) 스님이 산문집 ‘홀로 사는 즐거움’(샘터)을 펴냈다. 1999년 ‘오두막편지’ 이후 5년 만이다.
12년 전 강원 산골 오두막집으로 은둔한 그는 지난해 12월 서울 길상사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의 회주(會主) 자리마저 벗어던졌다. 그는 2일 하안거를 시작하는 스님들을 독려하기 위해 길상사를 찾았다.
“강원도에 산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곳도 오래 있으면 타성에 젖습니다. 수행자는 끝없이 거듭나야 하지요. 안주하면 육신의 연령과 상관없이 늙게 됩니다.”
더 이상 간소해질 게 없는 삶인데도 스님은 더 간소하고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해 더 깊은 곳으로 떠날 생각이다. 수행자를 일러 운수(雲水)와 같다고 했다. 구름과 물처럼 살아 움직여야 수행자도 살고 그 기운으로 이웃도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스님은 한때 기침 때문에 한밤중에 자주 깬다. 처음엔 불편했으나 기침이 한밤중에 스님을 깨운 까닭을 헤아린 끝에 산문집에 적어 놨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란 소식으로 받아들이면 기침이 고맙게 여겨진다. 맑은 정신이 든다. 중천에 떠 있는 달처럼 내 둘레를 두루두루 비춰 주고 싶다.’(10쪽)
이 책은 2001년부터 한달에 한번씩 ‘맑고 향기롭게’ 회지에 쓴 글을 선별해 묶은 것. 이중 책 제목과 같은 ‘홀로 사는 즐거움’은 새로 쓴 글이다.
“홀로 산다고 해서 세상과의 끈을 놓으면 안 됩니다. 홀로 사는 사람은 어울려 사는 사람이 이루지 못한 사회적 기여를 해야 합니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스님은 이 책을 통해 풍요와 낭비에 물든 세상살이에 대해 경책(警策)을 던진다.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먹고 적게 걸치고 적게 갖고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하고 싶다. 폭력과 인간 부재의 시대에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불필요한 사물에 대해 자제해야 한다.’(199쪽)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