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죽이는 13km 파괴터널, 힘모아 막아내요
오마이뉴스| 기사입력 2004-01-10 20:12 | 최종수정 2004-01-10 20:12
[오마이뉴스 김혜진 기자]“원고 도롱뇽은 출석했습니까?”
“도롱뇽은 출석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도롱뇽의 친구들이 출석했습니다.”
2003년 10월 15일 도롱뇽을 대신해 법원에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지율스님 등 ‘도롱뇽 소송인단’은 경부고속철도의 천성산 구간 착공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후 지금껏 힘겨운 싸움을 견뎌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울산지법의 첫 심리를 시작으로 오는 16일 도롱뇽의 원고적격 심사를 남겨두고 있는 현재, 두 번에 걸친 단식으로 몸이 성치 않은 지율스님과 도롱뇽 소송단원들이 지난 8일 대구를 찾았다.
전국 11개 도시를 차례로 방문, 소송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소송인단의 수를 100만명으로 늘리자는 취지로 마련된 전국순회는 지난 7일 부산을 시작으로 8일 익산을 거쳐 세 번째로 대구에 도착했다.
이날 대구를 방문한 도롱뇽 소송인단은 오후 2시부터 대구백화점 앞에서 거리캠페인과 서명운동을 펼치고, 오후 7시부터는 ‘맑고 향기롭게 대구법당’에서 지율스님과의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천성산 관통할 고속철도는 13km의 파괴터널 필요
제대로 된 환경평가는 한번도 이뤄지지 않은 실정
천성산은 12개의 계곡, 22개의 산지늪과 30여종의 보호동식물의 서식치를 가진 산입니다. 생태계보존지역, 습지보존지역 등 10여개의 보존지역으로 묶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천성산에다 13km의 어마어마한 터널을 뚫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번도 아닌 두 번, 40여일간의 초인적인 단식을 이겨낸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
우선 그는 고속철도 사업을 강행하려는 정부에 대해 “아무리 국책사업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환경평가조차 없을 수 있냐”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천성산에 와서 구멍 하나 안 뚫어보고 어떻게 터널적격 심사를 할 수 있느냐”는 소송인단의 주장대로 실제, 노선재검토위원회의 약 10주간의 조사는 표피적이고 표면적으로 이뤄진 채 고속철도 건설을 강행하도록 결정되었단다.
이어 스님은 “유난히 물이 많은 천성산의 경우, 13km의 장대터널(우리나라에서 가장 긴)이 산을 관통하게 되면 공사전에 지하수와 수분을 필연적으로 빼내야 하기 때문에 도롱뇽은 물론, 수많은 생명체들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종단관통이 아닌 횡단관통을 해야하는 천성산의 경우는 산의 3분의 2가 뚫려야 하는 수난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덧붙였다.
지율스님은 “정부가 주장하는 친환경적 공법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산에 터널을 뚫게 된다면 결국 계곡을 관통하고 산을 파괴하고 생태계의 수많은 생명체를 죽게 만들 것이다”고 경고했다.
'설악산 지리산도 뚫었는데 그깟, 천성산?'
"정부가 하는 일, 무조건 양보가 미덕은 아닐 터"
“설악산, 지리산도 뚫었는데 그깟 천성산이 대수냐.”
“바쁜 세상, 정부가 고속전철 놓는다는데 왜 그러느냐.”
사람들 중에는 ‘그깟, 천성산’ ‘정부가 하는 일인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러나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키는 고집이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일 것’이라 충고하는 지율스님.
또한 그는 “정부가 하는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 아닐 것이다”며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찌보면 하찮고 작은 생물, 보잘 것 없는 천성산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스님이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내가 하찮은 천성산을 지켜냄으로써 보호받을 많은 산들을 생각해보라. 작고 하찮은 것에서 출발한 것들이 결국 더 크고 값진 것들을 지켜내는 보호막이 될 것이다”며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까이에 있는 자연의 소중함’부터 깨닫게 되기를 희망했다.
"도롱뇽이 원고, 생명의 역사를 다시 쓰는 아름다운 재판
우리는 무엇을 내도 이기고, 저들은 무엇을 내도 질 것"
▲ “우리는 무엇을 내도 이길 것이며, 저들은 무엇을 내도 질 것이다”고 강조한 지율스님
ⓒ2004 김혜진"폭풍속의 판자집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무모한 짓이니 그만두라는 말들도 많이 들었지만 공든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보여줄 것입니다.”
고속철도 관통을 막기 위한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소송’에 대해 정부는 공식적인 입장표명이 없는 상태다. 고속철도 건설은 국책사업으로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는 중이며 오는 16일, 도롱뇽이 과연 원고로서 자격이 있는가하는 ‘원고적격심사’를 남겨두고 있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율스님은 “우리는 무엇을 내도 이길 것이며, 저들은 무엇을 내도 질 것이다”는 말로 주위의 우려를 물리쳤다. 결국엔 목적없는 순수한 생명가치를 가진 우리가 이길 것이며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현재 진행중인 재판을 스스로 아름다운 재판이라 부르는 지율스님.
도롱뇽은 아직 원고적격심사도 통과하지 못한 채, 고속철도 공사는 여전히 진행중인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는 “도롱뇽이 원고가 되어 살 권리를 찾는 것은 ‘생명의 역사’를 다시 쓰는 아름다운 일임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풀 자라는 흙 속에 묻힐때까지 환경, 생명가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그는 끝으로 환경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힘겹지만 의미 있는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내가 얼른 대통령이 돼서 그만하게 할 거예요"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김연수(초등4)양과 김민호(초등2)군
"왜 고속철도 놓는지 이해를 못하죠"
풀꽃모임 대구모임의 회원인 전혜영(39·풀꽃모임 회원)씨는 초등학생 두 아이(김연수 초등4, 김민호 초등2)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그는 아이들에게 천성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 보여주기도 한단다.
도롱뇽을 왜 살려야 하는지, 산에 터널을 뚫으면 환경이 어떻게 되는지도 상세하게 설명해 준단다. 그러나 아이들은 '왜 고속철도를 놓아야 하고' '왜 그만두지 않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김민호군은 "나쁜 것을 알면서도 왜 자꾸 (고속철도 건설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고속철도 건설을) 당장 그만두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김연수양은 "(도롱뇽은) 생명이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며 나중에 생명이 없어지면 나도 살지 못한다고 배웠다"며 "(어른들은) 나중에 후회할 일을 왜 자꾸 벌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교 친구들은 이런 일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들 남매는 "학교 친구들에게도 이야기 해주고 알릴 것이다"며 당찬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 김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