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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04-10

    법정스님 길상사 법회 정리…6개월에 한번만 찾기로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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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길상사 법회 정리…6개월에 한번만 찾기로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3-12-21 18:43 | 최종수정 2003-12-21 18:43

“식물은 늙어가면서 늠름해지는데 동물은 추해지잖아요. 추해지지 않으려면 묵은 틀에 얽매여 있으면 안 됩니다. 묵은 틀을 버리고 새롭게 해야 해요. 한 생각 일으키면 훌쩍 버리고 떠나는 것이 출가 정신이고, 그 맛에 중노릇하는 겁니다.”


21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행지실(行持室). 법정(法頂·71) 스님이 지난달 말 길상사와 사회봉사단체 ‘맑고 향기롭게’의 회주(會主) 자리를 내놓은 뒤 처음으로 대중법회를 가졌다. 법회에 앞서 스님을 만나 뵙고 ‘모든 걸 버리고 떠난’ 감상을 들었다. 그는 “나도 언젠가 죽을 텐데 갑자기 사라지면 대중이 적응하기 힘들지요. 천천히 사라지는 연습을 하는 거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상좌(上座·제자) 스님들에게도 ‘회주’란 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상좌 스님들은 회주 스님 대신 ‘법자 정자 스님’이라고 불렀다.


이날 법회는 길상사 개원 6주년을 기념하는 자리. 이 법회를 마지막으로 법정 스님은 앞으로 길상사엔 6개월에 한번만 나타날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평소 그의 법회 때보다 1000명 정도 많은 250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법상(法床)에 오른 스님은 ‘가난’의 화두부터 꺼냈다. 길상사는 개원 때부터 ‘가난하고 맑은 절’을 표방했었다.


스님은 “온 세상이 과잉소비와 포식을 하고 있는 요즘 스스로 선택한 가난은 지구의 생명과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덕”이라며 “다같이 잘 살 순 없기 때문에 이웃과 나누면서 더불어 사는 윤리를 되새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그는 최근 잇따른 큰스님들의 열반을 보면서 느낀 소회를 피력했다. 특히 큰스님의 열반이 사람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법문이라는 점에 비추어 요란하고 번다한 영결식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선가(禪家)에서 ‘임종게’는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직접 전하는 마지막 한 마디를 의미하지요. 미리 써놓은 것은 유언이지 임종게가 아닙니다. 따라서 임종게를 남기는 것을 고승의 관례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고 봐요.”


스님은 9세기 당나라 고승 남악현태 스님의 임종게를 소개했다.


‘내 나이 올해 65세인데 사대(四大·흙 물 불 바람의 4가지가 모여 사람을 이룬다는 것)가 주인을 떠나려고 한다. 도는 스스로 아득해서 거기엔 부처도 조사도 없다. 목욕하고 머리 깎을 필요가 없다. 한 무더기 타오르는 불꽃에서 천 가지 만 가지가 넉넉하다.’


이처럼 생사에 거리낌 없는 경지를 생애 마지막에 솔직히 보여주는 것이 임종게인데 지금은 임종게가 남용되고 있다는 것. 법정 스님은 “한 스님은 ‘임종게를 남겨 달라’는 제자들을 꾸짖으며 ‘내가 지금까지 해온 말이 곧 임종게’라고 했다”며 “어떤 말을 남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사리를 우상화하는 분위기에도 일침을 가했다. 사리는 산스크리트어로 ‘타다 남은 유골’이라는 뜻이고, 화장(火葬)은 아무 것도 남기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것. 그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는 망치로 치면 깨지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45년간 중생을 제도한 대장경 법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죽음은 삶의 한 과정이며 죽음이 있어 삶이 빛나고 진지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문이 끝난 뒤 스님을 다시 행지실에서 만났다. 그는 “사숙(師叔·스승의 사형)인 계봉 스님은 죽을 때 남에게 신세지는 것이 싫어 바다에 몸을 던졌다”면서 “나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다비식을 요란하게 하는 것도 시줏돈으로 지는 빚”이라며 “과거 동산양계 화상은 내생(來生)에 무엇으로 환생하고 싶으냐는 말에 신도 집의 소로 태어나 금생(今生)에 진 시주 빚을 갚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새해맞이 법문을 들려달라고 하자 스님은 “묵은해와 새해를 구별 짓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며 “마음을 바꾸어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을 해야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