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성찰없는 바쁜 삶은 죽음위한 질주” 광주 강연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3-09-28 18:00 | 최종수정 2003-09-28 18:00
“현대인들은 바쁘게 사는 것을 미덕처럼 여기지만 바쁘면 바쁠수록 그리움이 고일 시간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바쁘게 삽니까.”
27일 오후 2시 광주 동구 대의동 남도예술회관. 사회봉사단체인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법정 스님이 갖는 전국 강연회의 첫 행사가 열렸다. 두 달에 한번씩 서울 길상사에서 법문하는 것을 제외하곤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스님을 모처럼 볼 기회여서인지 강연 1시간 전 이미 537석의 좌석이 모두 찼고 복도 난간 등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주최측인 ‘맑고 향기롭게’ 광주지부의 한 관계자가 “1년에 두 번 정도 스님이 광주에서 법문을 하시면 광주 불교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인사말을 하자 법정 스님은 “나를 신흥종교의 교주 식으로 소개하지 말라. ‘맑고 향기롭게’의 한 회원으로 참석했을 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강연에서 “삶을 차분히 즐기면서 영혼의 밭을 가꿔라”며 시종 여유로운 삶의 자세를 강조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바쁘게 달리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삶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채 죽음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것과 같지요.”
또 그는 최근 사회집단간의 극단적인 반목, 조급한 결론 찾기를 경계하듯 “무엇이든 단번에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밥도 뜸이 들어야 하듯 모든 것은 성숙을 위해 기다려야 합니다. 단번에 움켜쥐지 말고 쓰다듬어야 하고 곧장 질러가기보다는 돌아갈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는 이어 “봐야 할 것, 들어야 할 것을 최소화하라”고 권했다.
“이것은 소극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입니다. 너무 많은 걸 보고 들으면 업의 덫에 걸려듭니다.”
법정 스님은 50분간의 강연을 마친 뒤 ‘맑고 향기롭게’ 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봉사한다고 요란하게 떠들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사회적 현안인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이나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전국 강연은 다음달 1일 경남 창원, 2일 부산, 4일 대구에서 열린다. 02-741-4696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