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수정 2011.05.10 16:54기사입력 2011.05.09 11:20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30대에 쓴 유언 그대로 일흔아홉에 돌아가셨는 데 죽음을 약속대로 지키신 분이 과연 전세계에 얼마나 계실까요?
언행일치도 힘들다고 하는데, 법정스님은 거기에 글까지 더해 세 가지 모두가 한결 같았던 유일한 분일 것입니다."
윤청광씨(69)는 지난 해 3월13일 79세의 나이로 입적한 법정스님을 떠올리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 무소유 정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석가탄신일을 하루 앞둔 9일 윤씨를 만났다. 윤 씨는 예전에 법정스님과 함께 '맑고 향기롭게" 본부장을 역임했던 방송기자 출신의 현직 라디오 작가다. 윤씨는 1973년 1월 법정스님 '무소유'의 문고판인 '영혼의 모음'을 출간한 동서문화원 편집장 자격으로 '필자'인 법정스님을 처음 만났다. 사상과 종교를 초월한 그의 올곧은 성품에 감명받은 윤씨는 이후 40년의 시간을 줄곧 법정 스님의 테두리 안에서 함께 해왔다. 1994년에는 법정스님의 주도아래 그의 무소유 정신을 주창하는 순수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를 정채봉 작가, 이계진 국회의원과 함께 창설해 17년째 운영중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윤씨는 강조했다. "탐(貪), 진(瞋), 치(恥) 예컨대 '삼독(三毒)'을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필요한 만큼만 갖고, 불필요한 것에는 눈을 두지 말라는 얘깁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 이상의 것에 욕심을 내게 되면 결국에는 남의 것을 훔치는 단계에까지 접어들게 되니까요."
12일 개봉되는 영화 '법정스님의 의자'에서도 이같은 지혜가 그대로 투영돼있다.'법정스님의 의자'는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는 청빈의 도를 몸소 실천한 법정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목으로 사용된 '의자'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깃든 아주 특별한 물건이라고 윤씨는 강조했다. 스티브 맥퀸,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빠삐용'을 보고 영감을 얻은 법정스님은 땔감으로도 못 쓸 참나무 장작개비로 의자를 뚝딱 하나 만들었고, 의자 이름을 '빠삐용'으로 붙였다. 인생을 낭비한 죄로 절해고도에 갇힌 빠삐용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법정스님은 이 의자에 앉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진정한 자신으로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의 삶을 돌이키고 자문하며 참된 행복의 의미를끊임없이 떠올렸다고 한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삶은 '진정한 나눔의 삶'이었다. 수필집 '무소유'를 비롯해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인기 작가였지만 법정스님은 입적했을 당시 수중에 단 한 푼의 현금도 없을 정도로 청빈했다고 윤씨는 회고했다. 그가 출판한 책의 인세는 모두 나눔의 의미로 사용됐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무소유'의 출판으로 법정스님이 처음 받은 인세는 50 만원. 당시 큰 평수의 집을 몇 채 살 수 있을 정도의 거액이었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돈봉투를 뜯어보지도 않고 故 장준하씨의 유족에게 전달했다. 큰 딸 시집 보낼 돈이 없다는 유족의 딱한 사정을 듣고 법정스님이 흔쾌히 내린 결정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문현철 초당대 교수와 법정스님간 특별한 인연도 윤씨는 소개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문 교수는 어느 날 법정 스님을 찾아가 "대학을 안 다니고도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대학을 꼭 다녀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의 이런 당돌한 물음에 법정스님은 "베토벤에 가보라"는 한 마디만을 남겼다. '베토벤'은 광주에 있는 고전음악 감상실로, 법정스님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일종의 창구였다.
법정스님은 이처럼 자신이 행한 덕이 남에게 돌아가기를 원하는 '회향(回向)'의 정신을 온 몸으로 실천했다. "몇 권의 책과 한 모금의 차, 건전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듣던 음악과 몇 평의 밭이 법정스님이 가진 모든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요?" 라고 윤씨는 되물었다. 그것이 진정으로 '부처님오신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정신이라면서...
태상준 기자 birdcage@사진_윤동주 기자 doso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