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나는 관세음보살상 조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원이 이루어진 것은 순전히 법정스님 덕이었다. 만약에 내가 스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절 마당에 나의 관음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연이란 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을 미처 알지 못했다. 스님이 세상을 뜨시고 나서야 내가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법정스님은 아래와 같은 글을 적어 대화에 새겼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길상사의 뜻과 만든 이의 예술혼이 시절 인연을 만나 이 도량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모습을 보는 이마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의 원력으로 이 세상 온갖 고통과 재난에서 벗어나 지이다. 2000년 4월 28일 세우다.”
관음상을 만들 때, 또 그것을 길상사 마당에 세울 때, 그리고 그 뒤로도 절에서 어떻게들 생각할까 그런 염려를 나는 전혀 하지 않았다. 스님은 그 일을 나한테 맡겨 놓고 전혀 궁금한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조건 없는 절대의 믿음이 아니었을까. 자기가 말로 한 대로 법정은 그렇게 사셨다. 자기가 글로 쓴 대로 법정은 그렇게 실천하셨다. 말은 말대로 하고 글은 글대로 쓰고 그런 수가 많지만 스님은 그러시지 않았다. 산중에 혼자 사시면서 말은 누구랑 하셨으며 밥은 누구랑 드셨을까. 고독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법정을 보면 알 수 있고, 침묵이 영혼을 살찌운다는 것도 법정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스님은 거침없이 말했다. 고독과 침묵으로 무장되었기에 두려운 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 시대의 행동하는 지성이셨다.
작년 이맘때는 김수환 추기경을 보내고서 우리는 허전했었다. 법정과 김 추기경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형제와 같았다. 특히 우리 사회에 청순한 바람을 일으킨 점에서 그랬다. 어쩌면 1년을 사이하고 두 분을 한꺼번에 잃는 일이 생겼는가. 전에 내가 김 추기경께 물었다.
“언젠가는 내가 관음상을 만들게 될 텐데요. 천주교회가 나를 파문하는 건 아닐까요?” 그랬더니 그 분은 일본의 박해시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 주셨다. 천주교도들이 관음상을 놓고 기도를 했다고 하셨다. 관음조각 뒤편 잘 안 보이는 곳에다 십자 표시를 했다고 하셨다. 길상사 창립법회 때 김수환 추기경, 장익 주교가 함께 참석해서 눈길을 끌었었다. 관음상 봉안식이 끝났는데 맨 먼저 전화를 주신이가 장익 주교셨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그날 나는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땅에는 국경이 있지만 하늘에 어디 경계가 있습니까.” 우리는 다종교 사회를 살고 있다. 현금의 세계를 보라. 종교적 전쟁이 얼마나 심각한가. 만약에 우리나라처럼 여러 종교가 함께 하고 있는 마당에서 서로가 다투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떠하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진리를 사는 것이 종교를 지키는 일보다 우선해야 될 일이 아니겠는가.
언제이던가 법정과 마주하고서 내가 이렇게 물었다. 대학에 다닐 때 계기가 있어서 내가 불경 공부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의 성경책을 무심코 꺼내 들었는데 그야말로 하룻밤 새에 다 읽었다 할 만큼 그런 희안한 일이 있었다. 그게 무슨 까닭이요 했을 때 스님이 하신 말씀, “최 선생이 그 때 경을 읽는 눈이 열렸다.” 꼭 40년만의 숙제가 단칼에 풀린 것이었다. 스님은 직감력이 대단한 분이셨다. 망설임도 없었다. 그저 명명백백했다.
법정의 다비식을 보면서 나는 산다는 것에 대해서, 죽음이란 것에 대해서 그것이 내일이다 하는 것을 실감하였다. 죽음이란 것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통과 의례로 보이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고통이 있었다. 그 고통을 감수하는 용기를 우리가 보았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는 것이 없음을 똑똑히 보았다. 죽음을 넘어 이기고 가는 것도 보았다. 스님은 삶의 가치와 그 의미를 실천으로 보여 주셨다. 물질속에 함몰된 인간 정신을 물질로부터 해방시키려 노력하셨다. 스님의 장례 예절을 우리 국민 모두가 지켜보았는데 어디고 꽃 한송이가 놓여 있지 않았다. 얼마나 고결하였던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법정은 예술과 종교가 만나서 서로가 좋다는 인식을 갖고 계셨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중요한 가치들이 각각 분리되어 있는 속에서 살고 있다. 종합의 의지가 결여 되어 있는 세상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종교가 최고의 가치이기 위해서는 나누어지기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삶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스님은 그 근본물음에다 정신을 집중시켰다. 여러모로 분산된 현실을 아름다움의 차원으로 끌어 올리려 총력했다. 법정은 진선미 일체라는 고전적 가치관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는 거인의 삶을 사셨다. 스님은 받쳐줄 직함도 없는 분이셨다. 오직 스님이란 단어가 있었는데 법정은 그 스님이란 말조차도 부담스러워 하셨다. 스스로를 중이라 하였다. 누가 큰스님이라 할라치면 아니라고 펄쩍 뛰셨다. 병상에서 스님은 강원도 눈이 보고 싶다 하셨다. 시간과 공간을 버리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아주 떠나셨다. 그렇게 맑게 사셨으면서도 그래도 스님은 하얀 눈이 그리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