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로서 법정
[철학으로 세상읽기]
2010년 04월 29일 (목) 10:54:46 김재현 경남대 인문학부 교수 webmaster@mediaus.co.kr
지난 3월 11일 법정스님(이하 법정)이 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받은 적은 있지만, 직접 만나본 적도 없고 그의 글에 크게 깨달음을 얻은 경험도 없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그가 죽음을 준비했던 과정을 알게 되고, 또 그의 삶과 사상을 보면서 그를 추념하는 마음으로 집에 있던 [무소유]를 다시 읽어 보았다. 그러면서 법정이 우리시대의 진정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무소유> 저자 법정 출판사 범우사
나는 철학교수와 철학자를 엄격히 구분하고 남들이 나를 철학자라고 부를 때 나는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교수’라고 말해 왔다. 철학교수는 대학 등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직업적 전문가이고 철학자는 시대와 역사, 사회, 삶에 대한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 즉 이론과 실천을 일치시키는 사람을 말한다. 철학자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고 그 물음을 풀기 위해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법정은 자주 묻는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물은 사람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홀로 있으며 수행과 정진을 하면서 실존적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법정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했고 또 그렇게 살다가 죽는 순간, 죽음 이후의 시간까지도 그의 생각대로 되길 바랐던 것이다. 나는 철학자로서의 법정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사회와 현실에 대한 관심과 참여
스님으로서 법정만큼 이 세상(세속)의 일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참여하고 노력한 사람이 많지 않다. 그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불교대중화를 위해 우리말 [불교성전]을 만드는 데 참여하면서 약 5년간 명진스님이 현재 주지로 있는 삼성동 봉은사의 다래헌에 머물렀다. 그 당시 [씨알(아래아)의 소리] 편집위원을 하면서 형사의 감시망을 피해 가며 편집회의를 봉은사 다래헌에서 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에 그는 “선(禪)은 순수한 집중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실상을 자각하는 일이며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실존에의 길”이며 “종교는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사회 부조리를 지적하는 사회참여 의식이 요청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함석헌, 장준하 선생 등의 주도 아래 결성된 ‘민주수호국민협의회’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유신철폐 서명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박정희정권은 1975년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여 8명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다음 날 모두 집행했다. 법정은 “사법사상 일찍이 그 유례가 없었던 이런 만행 앞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죄 없는 그들을 우리가 죽인 거나 다름없다고 나는 자책했다”고 술회한다. 그는 무력감, 죄책감과 함께 적개심, 증오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출가 수행자로서 적개심과 증오를 느끼는 것도 또한 자책이 되었다. 무력감과 함께 사회운동도 개인의 인격형성, 깊은 수양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인가 그는 송광사가 있는 산으로 떠났다. 그러나 산 속에서도 그는 결코 현실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었다. 법정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면서 생태윤리를 강조하고, 또한 문명비판가로서 인간소외와 환경문제의 핵심에는 결국 자본주의 체제와 제도의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착취와 존재의 상품화뿐 아니라, 모든 생산의 토대가 되어 자연을 허물고 파괴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는 생산체계 그 자체가 바로 자본주의의 야만성이다”
이 야만성 때문에 우리들은 ‘소유’와 ‘과소비’에 집착하게 되고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존재’, 진정한 삶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사랑과 나눔이며 따라서 자유와 무소유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소유와 자유의 철학자
법정의 무소유 정신은 은사인 효봉스님과 효봉의 맏제자인 구산스님으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다. 그는 또한 간디와 소로우의 간소한 삶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법정에게서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인생관, 가치관에 따라 무소유의 정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를 물을 필요가 있다.
법정은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淸貧)은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선택한 가난은 ‘자발적 가난’이란 뜻으로 가난하다는 말의 한자는 빈(貧)인데 이는 ‘나눔’을 뜻하는 분(分)과 조개와 화폐를 뜻하는 패(貝)의 결합어이다. 즉 자신이 가진 재산을 나누는 것이 ‘빈’의 한자적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나눔으로써 진정으로 맑고 가난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약 20여 년 전 친한 친구가 출가한 후 (몇 년 후 다시 속세로 나왔지만) 안거를 끝내면 마산에 있는 우리 집에 오곤 했었다. 그때 기억에 남는 대화 중 하나는 “너(필자)와 나(승려)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무어냐?”라는 질문이었는데 나는 적절한 대답을 못했고 그는 “너는 계속해서 쌓는 것이고 나는 끊임없이 버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짧은 그 한마디를 가끔씩 떠올리며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곤 했다.
철학교수를 하다가 농부철학자가 된 윤구병은 “무소유는 공동 소유의 다른 이름이다. 나눔과 섬김의 바탕은 무소유에 있다. ‘나무 한 그루 베어 내어 아깝지 않은 책’으로 나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들겠다”라고 말했다.
법정이 선택한 승려, 수행자로서의 삶은 자유와 해탈을 위한 삶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와 해탈의 삶은 곧 무소유와 이웃사랑의 삶, 자연과 함께 이웃과 함께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삶이기도 했다.
현재에 충실한 실존적 삶
법정은 “나는 오늘을 살고 있을 뿐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현재의 삶, 순간순간의 삶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왜냐하면 삶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고 따라서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과거를 따르지 말라. 미래를 바라지 말라. 한번 지나가 버린 것은 이미 버려진 것, 그리고 미래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당면한 현재의 일들을 자신의 처지에서 잘 살펴 흔들림 없이 바르게 판단하라. 그리고 그 경지를 더욱 넓히라. 다만 오늘 해야 할 일에 전력을 기울이라”<대장경 ‘일야현자경’>
▲ <일기일회> 저자 법정 출판사 문학의숲
만약 우리가 “과거나 미래 쪽에 한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충고하며 “순간순간 당신 자신이 당신을 만들어 간다. 명심하라”고 일갈한다. 왜냐하면 늘 “깨어있는 사람만이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몇 해 전에 수첩에 옮겨 놓았던 임제스님의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입처개진: 지금 이곳에서 깨어있으면 이르는 곳마다 모두 진리이니라)이라는 말의 의미도 실감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법정은 임제의 이 말을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라고 해석하는 것 같다.
그의 법문집인 [일기일회(一期一會)]는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을 뜻하는 말로서 ‘현재에 충실하라’고 했던 그의 가르침을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법정에게 있어서 깨달음과 수행은 이 세상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는 “우리가 마음의 수양을 하고 개인의 수행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만 멈추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자신도 이 말을 충실하게 실천해 나갔다.
법정은 “자기정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면서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바꿔나가고자 했다. 그는 일찍이 사회운동은 운동하는 사람 개인의 인격 형성과 이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인격수양 즉 실존적 자기변화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의 일환으로 길상사를 창건하면서 ‘가난하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맑고 향기롭게’는 마음과 세상,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하자는 3대 실천 덕목을 표방하고 있는데,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를 뜻한다고 한다. 그는 “세상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지닐 때 우리 둘레와 자연도 맑고 향기롭게 가꾸어질 것이고,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세상도 또한 맑고 향기로운 기운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종교 없이도 사랑을 실천하며 바르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바라는 바”라고 하면서 “종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자기 종교의 잣대로 재려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종교로부터도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천함으로써, 고 김수환추기경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벽을 허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길상사의 개원식에 추기경이 참석했고 법정은 답례로 명동 성당에서 특별강연을 했으며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발행하는 평화신문에 성탄메시지를 기고하기도 했다.
무소유, 자유, 사랑 그리고 나눔과 행복에 대해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실존적 삶에 대해 맑고 향기로운 글로 표현하고, 치열하게 실천하는 삶을 살다 간 철학자 법정의 말을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새겨 본다.
“구도의 길에서 안다는 것은 행(行)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