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선생과 법정스님
박석무 - 다산학연구소 이사장
법정스님이 열반하셨습니다.
3월 11일, 큰 별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그 후 10여 일동안 스님에 대한 보도를 지켜보면서 참으로 많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욕칠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도 있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연발하면서 반성과 회오의 느낌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쥐꼬리만큼의 명예라도 더 얻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발버둥 치면서 살아왔던가라는 느낌 때문에, 한없는 자괴감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버리거나 남에게 주워버릴 수록 얽매임에서 풀려나고, 더 많이 지니고 쌓아놓을 수록 옥죄여 살아간다는 스님의 말씀이 왜 그렇게 절절히 가슴에 와 닿았을까요. 더 무서운 것은 그분이 글에서 말했던 내용이 아니라, 입적한 뒤부터 다비에 이르고, 유언이 공개될까지의 모든 과정은 짐승과 큰 차이 없이 살아가는 인간모두에게 너무나 큰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말빚을 더 이상 세상에 남겨두지 않겠다고 모든 책의 절판을 권고한 대목에서는 더욱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스님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을 가장 사랑하는 책 중의 하나라고 명확히 말했습니다. 그 책을 들고 유배지이던 다산초당에 찾아가 마루에 앉아서 읽는 재미는 더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고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권력에 짓눌려 18년의 유배살이를 했던 다산은, 500권의 저서를 남겨, 그 책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더 오래 세상에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습니다. 자유의 몸이면서 스스로 유배살이를 선택해 깊은 산속에 숨어서 도를 닦으며 글을 쓰고 책을 펴내 많은 독자를 확보했던 스님은 이제 열반하였으니, 더 이상 책의 출간은 하지말아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다산과 법정, 처한 시대가 다르고 처한 입장이 다르며, 학자와 신앙인이라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그 두 분의 글과 행동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큰 교훈을 남겨준 점은 큰 차이가 없어서 두 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렇게도 독서의 중요함을 아들이나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다산, 책과 차와 음악만 있으면 가장 행복했다는 스님의 뜻은 상당히 가까웠습니다. 도와주었다는 말을 하지 않고 도와주는 일이 참다운 도움이고, 입을 열어 말하는 도움은 도움이 아니라는 뜻도 두 분은 같았습니다.
글에 쓴 대로, 말을 했던대로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실행했던 법정스님, 행동이 없는 논리만으로는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고 주장한 다산과는 통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다산과 법정, 역시 큰 민족의 스승임에 분명합니다.
[송광사 회보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