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법정스님, 경제학 그리고 경영학
불교와 경제학은 완전히 별개로 보이지만 사실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학을 구성하는 기본원리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이는 우리가 특정 상품을 아주 적거나 아주 많이 갖지 않고 여러 가지 상품을 고루고루 가질 때 효용이 극대화된다는 법칙이다. 이는 금욕주의와 욕망에 탐닉하는 두 극단을 모두 거부한 석가모니 부처의 선택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물질적으로 안락한 삶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금욕생활의 포기로 건강을 되찾은 석가모니는 마침내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의미에서 ‘상생의 불교경영학’이란 책은 불교경제학을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경제학’ ‘관용과 평화의 경제학’ 그리고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경제학’이라고 정의하면서 이의 본질은 중용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녹색성장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녹색성장위원회는 ‘녹색성장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으로 경제성장과 환경파괴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실현한다’라고 규정한다. 2000년 1월 27일자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최초로 언급됐으며, 다보스포럼을 통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녹색성장위원회 웹사이트에 기술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녹색성장 개념은 바로 지구를 구하는 불교경제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불교 관점에서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라기보다는 광대한 우주 속 하나의 작은 요소이며 모든 다른 생명체의 은혜를 통해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경제학은 인류를 위한 경제학이 아니고 지구를 위한 경제학인 셈이다.
지금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다. 스님은 난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집에 꼼짝도 못하고 있어야 하는 괴로움을 예로 들면서 무소유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쳤다. 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이는 스님의 진정한 가르침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스님의 잠언집에 나오는 ‘무소유의 삶’이라는 글에 따르면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자세하게 풀어 설명하셨다.
더 나아가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진짜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갖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을 버려서 소중한 것이 들어올 여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세계화 물결로 특정 분야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세계 일류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 이런 경쟁력은 문어발식 경영으로 얻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라는 가르침이 바로 무소유라면 법정스님의 사상은 현대 기업의 경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부실기업은 잘 못하는 부문에 쓸데없는 집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무소유의 가르침은 금융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 금융시장에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금융상품을 개별요소로 분해(unbundle)해 특화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단일 업무로 간주된 대출업무를 위험평가, 대출취급, 대출자금 조달, 대출관리서비스, 대출자산 보유 등으로 분해해 선택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불교는 현실적인 종교이고 부에 대한 적개심이 없어 다른 종교에 비해 상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뤄볼 때 불교는 경제학 또는 경영학과 인연이 깊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경영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