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성철과 법정 / 이재성
한겨레
성철 스님은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깨달은 후 점차 닦는다)를 비판하며 돈오돈수(단박에 깨치면 더이상 닦을 것이 없다)를 주장했다. 조계종 창시자인 지눌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심지어 “조계종 종헌에서 보조 스님을 빼야 한다”며 당시 자신이 방장으로 있던 해인사 선방에서 보조국사가 지은 수행지침서 <절요>를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토굴에서 8년 동안 장좌불와(잘 때도 눕지 않음)하며 면벽참선했던 성철 스님은 ‘점수’를 핑계로 시주만 축내는 게으름뱅이들을 가장 멸시했다.
해인사가 이렇게 나오자 보조국사를 모시는 송광사는 현대판 ‘분서갱유’라며 반발했다. 송광사는 해인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종의 양대 사찰로, 보조국사가 돈오점수설을 주창한 곳이다. 송광사는 1987년 보조사상연구원을 개설해 돈오돈수설에 대응했는데, 첫 원장으로 당시 송광사 수련원장이었던 법정 스님이 취임했다. 법정 스님이 성북동에 창건한 길상사는 송광사의 옛이름이며, 법정 스님의 오랜 보금자리였던 송광사 불일암은 지눌의 시호(사후에 왕이 내리는 이름) ‘불일보조’에서 따왔다.
법정 스님은 “한꺼번에 단박 깨닫고 단박 닦는다, 혹은 더 닦을 것이 없는 깨달음, 말은 그럴듯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삶의 진실에서 벗어나 있다”며 “깨달음이 무언지, 닦음이 뭔지도 모르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의 선의지를 이웃과 함께 나누어 가지는 쪽이 오히려 더 진실한 신앙인이요, 보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철과 법정, 두 큰스님이 모두 입적한 지금 돌아보면, 전자가 불교계 내부의 각성을 촉구한 불호령이었다면, 후자는 외부로 열려 있는 실천을 강조한 자비심이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따지기 어렵다. 불교계를 능멸한 이들이 천안함 침몰 사태 뒤에 숨어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요즘, 두 분의 빈자리가 더 커 보인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