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無所有)’의 진정한 의미
2010년 03월 29일 (월) 김상돈 webmaster@kndaily.com
살아 생전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강조하더라도 ‘무소유’라는 책만은 꼭 소유하고 싶다고. 이 말처럼 물질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정신과 반대로 청빈과 겸손 그리고 비어냄을 강조한 법정 스님의 글 한 구절 한 구절이 현대인의 심금을 울렸다.
소유욕으로 발버둥치기 보다는 조금은 빈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복잡한 현대 사회이나마 보다 건강하고 현명하게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뭔가를 구하려 노력하되 딱 거기까지만 하기, 전전긍긍하고 내심초사 집착하고 고통 받는 것이 얼마나 낭비적인 소모인지, 어차피 내 손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만물의 이치인데 말이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富)보다 휠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나이 들면서 소유한 것, 소유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이 소유 개념엔 비단 물질적인 것만 아니라 권세나 명예같은 비물질적인 것도 포함된다. 자본주의 역사를 소유의 역사라 할 때, 여기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소수고, 그 소수는 본질적으로 물질만능 자본주의에 저항적이다. 법정 스님 역시 소수자의 삶을 일관되게 사셨다.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종교계를 대표한 민주주의 수호자였고 ‘녹색평론’을 늘 곁에 둔 생명주의 실천가였다.
무소유를 실천하기는 어렵다.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무소유를 주장한 스님도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하기보다는 ‘불필요한 것’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버리지 못하니 집착하게 되고, 집착하니 번뇌에 빠지고, 번뇌에 빠지니 삶이 혼란스럽고 무거워진다. 근본적인 해결은 모든 소유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의식작용을 제어하는 것인데, 수행자가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스님은 업(業)을 쌓지 말라고 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만이라도 버리라고 가르쳤다.
스님의 말처럼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놓고 가게 마련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에겐 소유가 적을수록 좋다. 소유한 것이 적을수록 나그네의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늦게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가지고 갈 것이 하나도 없다는 ‘본래무일물’의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세속의 눈으로 무소유로 보이는 저작물까지 ‘말빚(말로 남에게 진 빚)’이라며 부담스러워하신 스님의 삶이 부럽다. 우리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는가.
김 상 돈 경남애니메이션고 교장ㆍ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