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를 '소유'하려는 부끄러운 사람들
이병렬
얼마 전 이 시대의 큰 스님이자 수필 <무소유>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던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드셨다.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라는 당부에 아랑곳없이 스님의 열반에 따른 다비식과 함께 그분의 유언이 연일 언론을 장식했다. 다비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스님과 인연이 깊은 길상사에는 추모인파가 줄을 잇는다고도 한다. 그만큼 스님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존경받는 불자이자 스승이었다.
스님은 입적하면서 당신의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를 받들어 스님의 책을 출판했던 출판사들이 절판을 선언했다. 그러자 교보문고를 위시한 전국의 서점에 스님의 대표 산문집인 <무소유>가 동이 나고 이어 그 가격은 10만 원 이상으로까지 치솟았다. 어디 그뿐인가. 15만 원을 넘어 25만 원의 호가가 있었다고 하며 26일에는 경매사이트 '옥션'에서 93년판이 110만 5000 원에 낙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93년판이라면 범우사의 문고판 범우 에세이 시리즈의 열다섯 번째 책 <무소유>이다.
사실 스님의 산문집 <무소유>는 1976년 4월 15일 범우사 문고판으로 처음 출간된 뒤 1999년에 판형을 달리한 개정판 <무소유>가 출판되어 2010년 3월까지 3판 86쇄가 발간되었고 열반까지 33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간 뒤 1984년 이달의 청소년도서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공공기관 및 단체의 권장도서, 우수도서 혹은 좋은 책으로 소개되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 되었다.
그렇다면 <무소유>는 어떤 수필인가. <무소유>는 1971년 3월 <현대문학> 제195호에 발표된 법정 스님의 산문으로 200자 원고지로는 14장 남짓의 짧은 글로 전체 15개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네 개의 내용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글에서 스님은 (1) 간디의 일화 제시를 통해 소유의 개념을 소개한 뒤 (2) 선물받은 난초를 키우는 과정에서 깨달은 소유와 집착의 관계를 역설하고 (3) 이를 통해 '소유'의 부정적인 측면을 밝힌 후 (4) '무소유의 역리'를 설파하고 있다.
<현대문학>에 발표된 원문은 1971년 우리의 언어생활을 보여주듯이 한자어가 한자 그대로 표기되어 있고, 문장의 종결도 종결어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읽어보면 투박한 표현이 눈에 띄인다. 그러나 일화 제시와 예화 그리고 이를 통한 의미 파악 등 잘 짜인 구성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주제의식을 아주 쉽게 표현해내고 있다.
간디의 일화를 통해 스님이 깨달은 것은 간디에 비해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역사를 '소유사'로 풀어내면서 난초를 키우며 알게 된 소유와 집착의 관계를 통해 소유할수록 집착하게 되고 그만큼 소유한 것에 구속된다는 생활 속 지혜를 밝혀내고 있다. 즉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자 하는 절실한 바람이 지은이의 체험과 어우러져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 삶 속에서 흔히 잊고 있는 것이 바로 소유의 고통이다. 가진 자는 잃지 않기 위해, 가지지 못한 사람은 또 그들 나름대로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글은, 이러한 소유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길은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고 이것이 바로 자유로움이라는 것이며 이를 스님은 '무소유의 역리'라 설파한다.
사실 <무소유>에는 인생의 철학적 의미라는 중량감 있는 주제가 담겨 있다. 그러나 스님이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한 것을 매끄러운 구성과 함께 진솔하게 표현하여 독자들은 쉽게 읽고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은 표면상 역설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깊이 있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스님이 강조한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음'이 아니다. 간디의 일화를 제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소유'를 통해 스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는 것에 대한 경계다. 결국, 이 수필은 물질만능주의의 사슬에 묶여 소유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시사하고 있다.
앞에서 밝혔듯이 1971년 3월 <현대문학> 제195호에 발표된 <무소유>는 1976년, 스님의 글 25 편을 묶은 범우사의 문고판 범우에세이 <무소유>에 수록되었고, 이어 1978년 집현전에서 발행한 <법정수상록 - 영혼의 모음>에 수록 되었으며 1991년에는 샘터에서 간행한 법정 산문집 <영혼의 모음>에도 수록된다.
그리고 지난 1999년 다시 범우사에서 재출간한 개정판 <무소유>(3판 1쇄)에도 수록되며 독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된다. 특히 이 개정판에는 10편의 글이 추가되어 모두 35편의 글이 묶였는데 이 책에서 <무소유>는 한글세대에 맞춰 단어와 문장이 매끄럽게 다듬어져 현재 우리가 보는 형태의 글로 새롭게 태어난다.
110만 5000 원에 낙찰되었다는 문고판 <무소유>에는 모두 스물다섯 편의 수필이 묶여 있다. 사실 <무소유>는 발표 원문에서부터 네 차례에 걸친 단행본 출간 과정 속에 스님이 직접 지속적으로 퇴고를 한 글이다. 이러한 노력은 바로 치열한 작가정신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법정 스님은 자신이 발표한 글을 부단히 갈고 다듬은 '진지한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소유>를 좋아하는 것은 그 글의 내용이 스님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흔히 '글이 곧 삶'이라 한다. 법정 스님이야말로 바로 그 사실을 몸소 실천해 보인 이 시대에 보기 드문 큰 스승이자 문필가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들 삶은 어떠한가. 스님이 외친 '무소유'를 좋아하고, 그러한 말씀을 담은 글을 좋아했으며, 그 글이 수록된 책을 사 읽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무소유'를 외치고 이를 몸소 실천한 스님의, 정가 8,000원짜리(스님 열반 전에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5,600 원이면 살 수 있었다) 책을 '소유'하려고 15만원, 25만원 아니 110만 5000원을 외치고 있다.
스님을 좋아한다는 우리가, 스님의 글을 읽었다는 우리가, 지금 <무소유>를 '소유'하려고 안달이 나 있다. 스님께는 참말이지 얼굴을 들지 못할 부끄러운 우리들의 모습이다.
<원문보기 : 현산서재 → http://blog.naver.com/lby56/150030273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