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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4-06

    무소유를 왜 소유하려 드는가 -이은자 (하이서울뉴스 3.30)

본문

무소유를 왜 소유하려 드는가



아무리 고개를 둘러봐도 바다와 산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어촌과 산촌에서 바다와 산과 웃고 얘기하고 숨쉬며 남다른 열정을 쏟았던 벽지 초임 시절. 그 시절 불편했던 비문명적인 여건까지도 다 감사해하며, 오히려 특별한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한 권의 책 덕분이 아니었나, 지금 새삼스럽게 돌아본다.


1976년, 섬마을 선생님으로 발령받아 라디오 하나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시켜줄 때, 라디오로부터 법정스님의 [무소유] 발간 소식을 접하게 됐다. 선배에게 몇 권의 책 주문을 하면서 기자는 [무소유]도 부탁했었다. 당시 유행했던 작은 문고판의 책들처럼 우선 작은 책이라는 것만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 늘 손에 들고 다녔었다.


자취하던 집은 혼자된 아주머니와 두 딸이 사는, 아주 조용하고 깨끗한 토담집이었다. 방 한 칸에 부엌 하나가 몫으로 주어진 그 집은 마치 기자를 위해 마련된 것처럼 편안하고 애정이 가는 집이었다. 햇빛과는 상관없이 공기소통의 구실밖에 못하는 북쪽으로 난 두어 뼘 정도의 작은 창은 뒤란 텃밭을 늘 내다볼 수 있었다. 흙으로 빚어진 부뚜막도 생각 난다. 몸에 '꼬옥' 맞았던 그 부뚜막 앞에 쭈그리고 앉아 군불을 지피면서 많은 추억들을 끌어올리며, 그리운 사람들을 그리워했었다.


그 부엌에서 특히 맘에 들었던 것은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던 서쪽으로 열린 작은 양철문이었다. 퇴근을 하면 그 문으로 온종일 외로웠던 방안 것들을 위해 붉은 노을을 매번 몰고 들어가곤 했다. 그 중에서 가장 사랑을 독차지했던 것은 이사 때마다 줄곧 동행해준 작은 석란 화분이었다. 기자와 함께 칩거하며, 마치 꽃을 피워주지 않으면 역정이라도 낼 것 같았는지, 조심조심 여리고 새하얀 꽃을 뜸하게 피워주곤 했었다.




이런 환경에서 접한 [무소유]는 인본주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성 회복은 고도의 과학문명이나 첨단기술이 아니라, 한 권의 책과 한 포기의 풀, 한 줄기의 햇살, 바로 이런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마음의 눈을 돌릴 줄 아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토담집의 자유와 평화가 주는 아량과 여유가 늘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98년 [산에는 꽃이 피네]와 99년에 발간된 [오두막 편지]는 다시 한번 그 때의 정경들을 되새김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거의 이태 동안 베스트셀러가 돼왔던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스님은 세상사의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갈 지혜를 알려준다.


당시 일흔이 넘은 노스님은 강원도 산골짜기 외딴 오두막에서 손수 밥을 짓고 물을 긷고 불을 지피며, 철저하게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의 대화상대는 이름 모를 풀벌레, 가끔 부엌을 찾아오는 두꺼비, 그리고 향기로운 달빛들이다. 동산에 떠오르는 보름달을 맞이하는 날, 그는 둥근달을 맑은 마음으로 마중하기 위해 마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오두막 편지]는 법정스님의 깊이, 맑음, 비우기가 그대로 전해오는 책으로 ‘버리고 떠나기’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안겨주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1993년 판이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110만 5천 원에 낙찰됐습니다. 이는 1993년 당시 시중가였던 1천500원보다 700배 이상 높은 금액입니다. 이 책은 지난 23일 1천500원으로 경매가 시작됐으며 26일 낙찰되기까지 23건이 입찰 됐고 법정스님 서명 등 특이한 점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옥션에는 법정스님 입적 이후 무소유 중고책이 하루 평균 10건씩 올라오고 있으며, 발행된 지 20년 이상 지난 책은 경매 시작가가 최고 30만 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뉴스를 접하고 책장 한 켠으로 가서 [무소유]를 열심히 찾았다. 버린 기억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없었다. 열 번 넘게 이사를 했고 그 사이 분리수거 날이면 미안한 마음으로 버렸던 책들이 많았으니! 누가 버렸느냐고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을 때, 아들이 21세기 대한민국 아이러니가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라며 "무소유를 설파한 스님의 책을 왜 소유하려고 하는지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 서가에 나란히 꽂혀 있는 [산에는 꽃이 피네]와 [오두막 편지]를 가리켰다. “휴, 다행이다!” 특히 [오두막 편지]에는 2000년 3월에 구입했다는 메모와 지금의 사인과 똑같은 기자의 사인이 있었다. 책 군데군데에는 굵은 사인펜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사실 무소유를 실천한 책이 바로 오두막 편지이고, [오두막 편지]에 [무소유]가 다 포함돼 있는데……. 우리는 지금 책 소유에 함부로 돈저울을 하고 있다. 지금보다 훨씬 순수했던 당시에 밑줄 그어 놓았던 스님의 말씀을 되새김하고 싶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은덕으로 숨을 쉬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1996)


때때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 없다면 우리 마음은 황무지가 되고 말 것이다. 명상하라. 그 힘으로 삶을 다지라.(1997)


깨달음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해 깨달음과는 점점 멀어진다.(1997)


겉과 속이 다른 정치꾼들을 보면서, 문득 흐루시초프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정치가란 시냇물이 없어도 다리를 놓겠다고 허풍을 떠는 자들이다.”(1997)


흔히들 21세기를 거론하지만 미래는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간다.(1997)



 시민기자/이은자

 hrccle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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