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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4-06

    법정스님과의 상면(上面) - 김숙현 (불교신문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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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과의 상면

김숙현 / 논설위원·희곡작가


1967년 말 서울 명동의 대한전척(주) 사옥, 한 사무실에서 불교신문 기자 공채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작문’시험 시간에 감독관으로 들어온 분은 훌쩍한 키에 파르라니 삭발한 두상에서 서릿발 같은 기상이 느껴지는 스님이었다. 뒤에 보니 그 분이 바로 법정스님이셨다.



작문 제목은 ‘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스님은 꽃가루 알레지가 심해서 봄이면 연례행사처럼 잔병치레를 하면서도 이른 봄의 쌀쌀한 바람결과 매화향과 산수유꽃과 토우(土雨)를 맞는 운수행각을 마다 않으셨다. 스님은 열반의 큰 여행도 봄 나그네처럼 그렇게 떠나셨다.


지난 여름 스님이 위중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너무나 친견하고 싶었다. 계신 곳을 수소문하니 종잡을 수 없게 여러 곳이 지목되었다. 다른 곳은 초행이라 엄두도 못 내고 자주 찾았던 불일암은 눈감고도 찾아가리라 생각했다.



어느 겨울엔가 묵언 중이던 스님이 포행 중에 우리 일행과 마주쳐 지팡이를 꽝꽝 두드려 반기셨던 비탈길이며 비가 조금만 와도 물웅덩이가 생겨 길이 자주 끊기던 진창길이며 ‘ㅂ’자 밑에 아래아(.)를 붙이고 연꽃을 그려 넣은 나무 표지판도 옛날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길 끝자락에 이르러도 불일암은 나타나지 않아 결국 허탕치고 말았다.


내 마음속 불일암과 현실의 불일암 사이에는 그만큼 큰 거리가 생긴 듯싶었다. 문득 법정스님의 첫 산문집 ‘영혼의 모음’에 쓰신 ‘상면(上面)’이라는 칼럼 한 구절이 떠올랐다. ‘평생토록 산문 밖 출입을 않고 하루 세 시간씩 잠을 자며 정진하다 입적했다’는 적연(寂然) 선사의 산골 암자를 법정스님이 돌아본 뒤 쓴 글이었다.


“나는 선사가 고목처럼 꼬장꼬장한 수도승, 인간적 탄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고집불통 노옹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암자의 한 귀퉁이에서 ‘거문고와 퉁소’를 발견한 뒤 비로소 일면식도 없던 선사가 훈훈한 친화력으로 다가왔다” 지금 우리 사회의 추모열기가 지나치게 ‘무소유’ 한 가지 측면만 부각되고 있어 다른 한편에선 법정스님과의 진솔한 만남을 오히려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불교신문 2612호/ 4월7일자]


2010-04-03 오전 9:26:18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