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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31

    법정 스님 이후 한국불교 - 조성택 (법보신문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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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시론] 법정 스님 이후 한국불교

기사등록일 [2010년 03월 30일 17:31 화요일]


맑고 향기롭게. ‘맑은’ 것이 내면의 성품이라면 ‘향기로운’ 것은 주위를 감싸는 덕이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상징하던 법정 스님께서 입적하셨다. 현대한국불교에 있어 법정 스님만큼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를 가진 분도 드물었다. 법정 스님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주로 출판과 언론이라는 현대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것들이다.



원래 출가자의 덕목인 ‘무소유’란 말은 불교적 의미망을 벗어나 거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인구에 회자되기도 하였다. 불일암을 방문해 스님께서 거처하시는 방이나 부엌을 본 사람들은 ‘무소유’가 도덕일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미학적 완성을 보여주는 것임을 체험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남기신 유언, 그리고 그 유언에 따른 장례의식은 이러한 일상적 미학의 한 완결이었다.



법정 스님에 대한 대중적 열망은 어떤 것이었을까? 스님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무소유’는 불교 전통에서는 특별히 새삼스러운 가르침이 아니다. 그럼에도 마치 무소유가 법정 스님만의 고유 영역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법정 스님은 은둔 수행자를 자처하셨지만 실제로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불일암 시절이 그랬고 길상사 창건의 과정이 그러했고 또 오대산 화전민촌에 계실 때도 그러했다.



나는 법정 스님의 대중적 열망과 인기는 말과 글의 ‘일상성’ 그리고 일상적 실천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신의 글과 말에는 소위 ‘불교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 그래서 상식적이었다. 불교인이 아닌 사람들조차도 스님을 좋아하였던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한편 불교계의 입장에서 보자면 법정 스님은 한국불교가 부족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가지고 계셨다. 그것은 ‘고급’이라는 이미지였다. 법정 스님의 글과 삶은 진정한 고급이 무엇인가를 대중들에게 보여 주었다. 불교가 한국 사회에서 ‘고급’의 지식인과 교양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은 법정 스님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한 얘기이지만 법정 스님의 글과 말이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것에는 당신이 가진 도도하리만큼의 고급한 이미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법정 스님 이후의 한국불교를 생각하면서 법정 스님의 고급한 이미지를 거론하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이다. 하나는 이제 그 고급한 이미지를 누가 대신 할 것인가 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직업별로 지식인 그룹, 그리고 계층별로 상류층의 다수 종교는 가톨릭이거나 개신교이다. 현대사회에서 한 종교가 가진 사회적 문화적 이미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법정 스님 이후 한국불교를 대표할 고급한 이미지의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안타까운 것이다. 두 번째로 우려하는 점은 법정 스님의 이미지가 앞으로 한국불교의 또 다른 중요한 무엇을 가리거나 가벼이 여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법정 스님의 고급한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대중과 함께 흙탕물을 튀기면서 함께 뒹굴고 그들의 비천한 삶에서 부처님을 살려내는 불교의 민중성도 중요하며 ‘시민보살’의 정치적 각성도 중요하다.



오늘날 현대 시민사회에서 정치적 각성은 정신적 깨달음의 또 다른 측면이기 때문이다. 수경, 도법, 법륜, 이 세 분 스님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중들과 함께 뒹굴고 그들의 정신적 각성과 함께 정치적 각성을 일깨우고 있는 스님들이 있다. 법정 스님의 고급한 이미지는 한국불교의 민중성과 정치적 각성이 함께 할 때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한국불교의 미래를 밝게 할 것이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1042호 [2010년 03월 30일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