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어 가셨으니 바람으로 다시 오소서
- 지우 / 허태기
법정스님,
바람처럼 오셨다가 꽃처럼 가셨네요.
눈을 무척 좋아하셨다는 스님,
그래서인지 스님께서 길상사로 돌아오시기 전날
내린 눈으로 길상사는 꿈결같이 아름다웠답니다.
그 땐 스님께서 병원에 계실 무렵이지요.
스님을 맞아들이기 위해 부처님은
길상사를 그렇게 아름답게 장엄하였나봅니다.
스님은 좋아하시는 눈이 다 녹기 전에
길상사로 오셨지요.
스님께서 길상사 행지실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스님의 회복을 실낱같은 희망으로
행지실 문 앞에서 빌었습니다.
사이시간으로 스님의 용태가 좋아지셨다는 전갈을 듣고
일순 안도했었는데 얼마 후 스님께서 열반하셨다는 소식에
실망과 아쉬움을 안고 망연히 하늘을 올려보았습니다.
스님께서 입적하신 순간
태양도 잠시 구름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구름가장자리로 빛나는 금빛 찬란한 광명은
미처 거두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소식을 접한 길상사의 신도들과
평소 스님을 존경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길상사의 뜨락을 슬픔으로 메웠습니다.
스님의 법구가 행지실을 떠나는 날
억새 같은 회오리바람이 한바탕 휘 젖고는
멀리 송광사로 스님을 배웅하였습니다.
조계산 다비장의 불길 속에서
한 송이 적련(赤蓮)으로 승화하신 스님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인간의 삶이 무상함을 새삼 새기면서
무언의 가르침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쳤습니다.
스님의 유해가 길상사로 돌아오는 날
어두운 밤 가운데서도 행지실의 대나무는 유난히 희었습니다.
스님의 소망대로 부디 피안에서 오래 머물지 마시고
별이 지면 해가 떠오르듯
번뇌와 병고로 괴로워하는 저희 중생들 곁으로 속히 돌아오셔서
가없는 자비심으로 저희들을 어루만져주시고 이끌어주시도록,
꽃이 되어 가셨으니 바람으로 다시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