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이슈로 본 논술] 무소유란, 가지지 않음으로써 나눔을 실천하는 것
강방식 - 동북고 교사·EBS 사고와 논술 강사
-------------------------------
법정 스님 입적과 무소유 설법◆법정 스님 입적과 간소한 다비식
무소유의 삶을 사셨던 법정 스님이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 입적했다. 입적하기 전날밤에는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고 말했다. 평소 유언대로 관과 수의도 마련하지 않았고, 평소의 승복을 입은 채로 다비식을 치렀다. 사리도 찾지 않았고, 조사도 없었으며, 만장도 없었다. 심지어 출판물까지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부탁까지 했다.
◆무소유를 통한 나눔의 정신
김수환 추기경은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했다. 1976년에 출간된 산문집 〈무소유〉는 시대를 성찰하는 아이콘이 돼 대중들이 자신들의 삶을 반추하는 거울이 되었다. 무소유라고 해서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나누어야 한다. 선행이란 다름 아닌 나누는 일이고, 나누는 일을 통해 마음이 맑아진다고 보았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무소유 정신으로 실천했다. 모든 것은 변하기에 이 순간을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라고 생각하여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착한 일을 했다는 생각 자체도 잊어버리라고 해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강조한다. 법정 스님도 수억원에 이르는 책 인세를 아무도 모르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했고, 나중에 본인은 병원비도 없을 정도였다.
▲ 조선일보 DB
◆대중과 소통한 어린왕자
해인사에 있을 때 어느 할머니가 8만 대장경판을 "아, 그 빨래판 같은 거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불교 경전을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런 차원에서 생생한 언어로 대중과 만나는 글쓰기 작업을 오랫동안 해 와서 대중들은 심오한 불교철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초에는 '선수련회'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템플스테이와 비슷한 수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단순한 기도 차원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닦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대중과의 소통은 사회의 모순과 만나며 적극적인 사회개혁활동으로 변했다.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을 하며 함석헌, 문익환과 함께 유신철폐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다가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8명이 사형을 당하자 충격을 받고 송광사 불일암으로 돌아왔다. 6.25전쟁을 겪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번민하면서 출가를 하게 된 것처럼 죽음은 법정 스님의 주요 화두였다. 죽음에 대한 성찰은 특이하게도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읽으며 깊어진다. 소혹성 B612호에 사는 어린왕자가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고,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화엄경〉과 함께 자신이 가장 감명받은 책으로 꼽는 〈어린왕자〉를 통해 숫자놀음, 즉 돈이나 물질 등, 가시적인 성과 내기에 빠진 어른들의 물욕을 비판하고 '나',' 너'사이에'와'가 개재되는 사회를 지향했다.
◆하느님과 부처님의 만남
법정 스님은 종교인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일반인들보다 너그러우나 다른 종교를 만나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진정으로 자기 종교의 본질을 깨달으면 타 종교의 본질도 알게 된다고 했다. 성경을 읽다보면 불교의 대장경을 읽는 느낌이고, 성경의 '하느님'을 '부처님'으로 바꿔도 의미는 똑같다고 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종교란 가지가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가지로 보면 그 수가 많지만 줄기로 보면 단 하나뿐이다'라고 했다. 법정 스님은 인도 브라만교의 경전인 리그베다에 '하나의 진리를 현자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여러 종교들은 단지 상징물만 다를 뿐이지 근본 뜻은 똑같다고 봤다. 길상사 개원식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박청수 원불교 교무를 초청했다. 성탄절에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길상사 앞에 내걸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맞닿아 있다.
◆법정 스님의 삶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
법정 스님이 자신의 책을 절판하라고 유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독자들은 스님의 올곧은 정신이 배어있는 책을 소장하려 했고, 스님의 책이 때 아닌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무소유〉를 소유하려는 묘한 역설적 상황이지만 김수환 추기경의 〈무소유〉 소유 의식과 같은 맥락이다.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기증했던 김영한씨는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썼던 백석 시인과의 인연과 사랑을 고백하면서 1천억원에 상당하는 대원각의 가치는 '백석 시 한 구절만큼의 가치도 없다.'고 했듯이, 법정 스님의 글 한 문장은 수천억원보다 더 값진 우리들의 보물이다. 법정 스님은 진정 가난해서 행복했던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의 정신을 기린다고 해서 국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당연시해서도 안 되고, 조금 더 돈을 벌고자 하는 소시민들의 삶을 무조건 부정해서도 안 된다. 무소유는 무한한 베풂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고소득층이 청렴의 윤리, 보시의 덕목을 실천하여 사회 통합과 복지 구현을 이루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어떤 측면에서 무소유는 사회적 가난을 구조적으로 뜯어고치라는 울림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