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후원하기 나의후원

보도

    • 10-03-25

    무소유와 나눔, 그리고 정치 현실 -우명균 (대전일보 3.25)-

본문

무소유와 나눔, 그리고 정치 현실


얼마전 순천 송강사에서 거행된 법정 스님 다비식엔 불자들만 참석한 것이 아니었다. 젊은 이를 비롯해 중·장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일반인들도 많이 참석했다. 그들은 옷깃을 여미며 법정 스님의 열반을 경건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지켜 봤다. 종교인이 아닌데도 이런 생소한 종교 의식에 동참한 이유는 무었이었을까.


사람마다 각각의 생각이 있었겠지만 한 참석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불교의 참 뜻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분이 생전에 갖고 있던 숭고한 철학과 실천의 모습은 나를 이 곳으로 이끌게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 지 묻기 위해 이 곳에 오게 됐다”


스님은 평소의 외침대로 빈 손으로 떠났다. 그의 외침은 무소유로 관통한다. 스님은 자신의 산문집 ‘무소유’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범부의 입장에서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긴 어렵지만 소유와 이기에서 벗어나 욕심을 버리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스님의 정신이 실천으로 승화됐다는 점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 온다. 유언장에서도 이런 정신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고 주문한다. 무소유 정신은 무한 경쟁과 탐욕의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의 등불이다.


얼마전 고 김수환 추기경의 1주기를 맞아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서울 명동성당은 추모 인파로 붐볐고, 추기경이 잠들어 있는 천주교 용인공원에도 참배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큰 빛을 남기고 떠난 추기경은 각박한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그리움과 존경의 대상이다. 김 추기경은 법정 스님이 무소유의 화두를 줬듯이 세인들에게 나눔과 베풂의 교훈을 남겼다.


스스로를 ‘바보’라 칭하며 낮은 곳을 찾았던 김 추기경은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을 위해 두 눈을 내 주는 나눔을 몸소 실천했다. 추기경이 퍼트린 기증이라는 사랑의 씨앗은 널리 퍼졌다. 장기 기증 희망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 그 방증이다. 이들 두 분의 종교인들은 종교의 벽을 넘는 깊은 교류로도 깊은 감명을 줬다. 상대 종교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 감싸는 모습은 아름다웠고, 따스했다.


무소유와 나눔의 정신은 요즘 정치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대비된다. 당리당략만이 최선이고, 나눔이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상대를 외면하고, 소통마저 없다. 소통의 부재는 아집을 낳고 독선을 부른다. 아집과 독선은 민심의 이반이라는 철퇴를 맞게 마련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모습은 권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보이게 된다. 권불십년이나 화무십일홍의 의미는 정치권이 새겨 들어야 할 충고다.


정당은 정치적 의견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그 목적은 권력의 획득과 정권 창출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목적을 위해 그릇된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여론 수렴과 민주주의적 방식을 통해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주 임무다.


정당이 모여 있는 국회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민생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그렇게 외치지만 실제는 그렇질 못하다. 성폭력 관련법이나 대학 학자금 등록금 상환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민들에겐 생존에 가까운 문제인데도 여야간 이견으로 뒷북을 치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정당의 모습도 별반 차이가 없다. 이념과 노선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대화와 타협은 찾아 보기 힘들다. 주요 현안을 둘러싸고 공방과 싸움으로 일관하고 심지어 자당내에서도 계파 정치가 판을 친다. 시대는 흘러도 정치권의 구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치의 후진성을 언제 떨쳐 낼지 걱정스러운 일이다.


얼마전 법정스님이 입적하면서 각 당은 비중있게 논평을 내놨다. 대립과 갈등, 탐욕을 질타하며 하나 같이 화합과 공존을 외쳤다. 맞는 말이고 중요한 얘기다. 그러나 이런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은 정작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는 오늘의 정치 현실 때문이다. 정치권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선 말의 성찬이나 구두선이 아닌 말 그대로 실천에 옮기면 된다. 그것이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교훈이자 가르침 아닌가.



우명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