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정 스님에 대한 단상(斷想)
▲ 주돈식 전 문화체육부 장관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후 스님은 처신이 평소의 말과 같이 무소유였다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스님은 무소유와 함께 말도 자제를 한 '과묵(寡默)과 무언(無言)'의 스님이었다.
그는 90년대 초 조선일보에 한 달에 한 번씩 수필을 연재했다. 산사에서 홀로 밥 짓고, 나무하고, 경전을 읽으며 느끼는 일, 계절이 전남 불일암(佛日庵) 근처에 오가는 것을 보며 생각하는 일, 달과 별을 보면서 느끼는 일들을 소재로 했다. 그의 글은 항상 참신했으며, 세상의 흔한 글들과는 달랐다. 스님은 글 제목은 직접 달아 왔다. 글이 세속 일에 참견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어느 날 스님은 "너무 피곤해서 글을 그만 쓰겠다"고 했다. "불일암에서 한 식구로 난(蘭)과 나 둘이서 겨울을 나고 있다고 하면 며칠 후 난이 수십 분씩 배달이 오고, 불일암을 소재로 글을 쓰면 불일암에 불청객이 밀려든다"는 것이었다. 다른 필자 같으면 이런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겠지만 스님에게는 피하고 싶은 것들이었으리라.
그러나 신문사 입장에서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글을 싣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편집국장이던 내가 만사 제쳐놓고 불일암으로 달려갔다. 가면서 생각했다. "어떤 말로 다시 펜을 들게 할 수 있을까." 원고료를 올려드린 적 있었지만, 스님은 액수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불당에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서 방법을 찾기가 더욱 힘들었다.
스님은 "아이고, 국장님이 바쁘실텐데 이렇게 오셨나요"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두 달간 더 쓰겠으니 그리 알고 올라가시지요"라고 했다. 더 말이 없었다. '과묵과 무언'이었다. 나로선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스님 말을 믿고 그 밤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일 것이다. 스님이 나에게 메모를 보내주셨다. '주 국장님, 벌써 두 달이 되었네요.' 나는 다시 불일암을 찾았다. 그런데 스님은 이번엔 송광사 본사의 폭포수 옆방을 준비해주셨다.
이 폭포는 송광사 오른쪽으로 흐르는 산골 개울물이 송광사 바로 위편에서 폭포를 이루고 있는 것인데, 그 소리가 천둥이 치듯 요란해서 낮에도 '무엇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겁이 날 지경이었다. 아마도 스님은 자꾸 글을 써달라고 찾아오는 이 친구를 말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를 이용하여 혼을 한번 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날 아침 나를 보자 빙그레 웃으시면서 "폭포소리가 어떠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폭포소리 좋았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자기 마음을 이미 정리한 것이었다. 조른다고 더 쓸 분이 아니었다. 발을 돌려 서울로 왔다. 지금도 그의 '과묵과 무언'을 생각하면 이 일화가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