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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07-06-28

    2007년 6월-<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본문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6월의 선정도서이자 봄 정기법회를 통해 맑고 향기롭게 회원들에게 숙제로 내어진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를 읽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저희 부산모임에서는 6월 27일(수), 오후 4시부터 가졌습니다.

그리고 독서모임을 마무리할 무렵 각자 생활 속에서 앞으로의 지구환경과 우리의 삶터를 조금이라도 덜 훼손하도록 하는 ‘다짐과 실천’들을 작은 공약처럼 내세워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이 시간이 참으로 뜻있었습니다.


유재경 회원님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결론부터 말한다면 부처님과 법정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피에르 라비는 부처님의 화신인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새삼 위대하고 과학적이라는 것을 스님께서 추천해주시는 친환경적 삶을 살라는 주제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깊이 느껴진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말 위대하다는 것을 친환경 운동가들이 계속 대변해준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불교인들이 타 종교인들보다 그 가르침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가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다.

피에르 라비는 적게 가진 것에 만족하고 그렇게 충분히 살아갈 수 있고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인디언이나 아프리카인의 삶을 예로 설명해준다.

자연이 인간의 욕심을 채워주는 물질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고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을 모두가 욕심을 버리고 생각해본다면 이런 분들의 말씀이 아니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잘 먹고 잘 입고 많이 가지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수 백년동안 외치는 서구의 자본주의가 지금 얼마나 많은 생명들의 삶을 도탄으로 몰아넣었는지! 동양의 여러 나라들도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착각하고 의심없이 달려간다.

듣는 귀가 적어도 피에르 라비는 수 십 개국을 다니면서 친환경적 농사방법을 친절하게 계몽하고 가르쳐 주는 게 부처님의 생애를 닮았다.

각 페이지마다 무릎치게 되고 감동을 주는 내용이 너무 많아 다 옮길 수가 없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나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우리는 필요없는 것들을 많이 알고 있고 정작 알아야 할 것은 모른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자질도 문제지만 언론이 제 구실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들 많이 일어보기를 바랄 뿐이다.


김순덕 회원님


세상의 기류에 역류하는 피에르의 삶은 순간순간 깨어있는 삶이었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때로 힘들었지만 그것의 토대는 조화로운 삶의 방식인 이 지구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과 실천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하고 잔인한 인간들이 사라진다면 아마도 동식물들이 큰 축제를 열 것이라는 대목과 그런 인간들 때문에 한 때 양서류가 되고 싶었다는 그의 푸념에서 나는 너무 슬펐고 가슴이 저려왔다.

특히 선진국의 최고 책임자들의 의식과 발전만을 외치는 우리 모두의 의식이 성장하지 않는 한 이 지구 생명에 가하는 인간의 학대는 계속될 것이라는 피에르의 말은 정말 가슴 깊이 새겨야 될 일이 아닌가. 그래도 그는 희망이 있다고 했다.

가뭄에 단비 내리듯 피에르의 생명 농업이 큰 전환점이 되고 있음에 정말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내 온 몸의 핏줄이 요동쳤음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눈에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음은 피에르의 열정에 대한 고마움과 동식물에 대한 참회만은 아닐 것이다.

그처럼 나도 행동으로 내 나름의 몫을 하겠다는 의미임을…….


김윤정 과장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를 읽기 시작한 첫 무렵 조안 말루프의 <나무를 안아보았나요>를 읽을 때와 같은 청정한 기운과 향기를 느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행복과 안락을 위한 선각자의 기도와 같은 메시지들은 내 안에서 공명하며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책 한 구절 한 구절 모두 어록처럼 기록해두고 싶어 밑줄을 그어나가며 읽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이래로 나는 매우 영적인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종교를 가진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써 이런 고백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나로서는 더 이상의 해석 없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세속적인 종교의 틀에 맞추어 신앙생활을 하노라면 틀에 찍혀 나온 붕어빵처럼 내 영성이 식상하고 물기없이 바트라져 건조해져 있음을 어느새 느끼게 된다.

피에르 라비의 책을 읽어 가는 순간순간 내 마음 깊은 곳의 일기장을 다시 열어보는 것과 같은 일치감에 반가움과 감정적 정화를 느꼈다.


“삶은 인간의 품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건들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 문장 앞에 하나의 단어를 꼭 넣어서 다시 말해보고 싶었다.

“자본주의에서의” 삶은 인간의 품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건들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라고.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철저한 혹은 처절한 개인적 각성과 노력없이는, 또한 비단 그러한 노력이 기울여져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제대로 갖추며 살아가기 어려운 조건들 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너무도 자주 멋진 말들을 사용해 핑계를 대고 있는’ 나 자신을 돌이켜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만 메말라가는 영성과 자비의 샘을 맑게 채울 수 있는 근본적인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자신들의 정신이 상처 입었음을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고 내 주변에 살고 있는 이 모든 ‘정신병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 고 싶었습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는 “나로 하여금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모든 존재에게 도움과 행복을 줄 수 있게 하소서”하는 달라이라마의 기도문이 떠올랐다. 이러한 대승적 발원이 결국 피에르 라비의 삶을 활짝 깨인 감각을 잃지 않고 아름답고 상징적인 삶으로 채울 수 있게 했으리라 생각하면서 나의 매일의 기도에도 대승적 염원이 마땅히 더 많이, 더 간절히 담겨야 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흙은 불확실한 모든 것들의 확실한 토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본질적이고 확실한 가치를 지닌 단 하나의 것은 바로 흙입니다.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김훈 선생의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구절이 연상되었다. “봄에, 새 잎 돋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씨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햇빛과 물을 합쳐 밥을 지어낸다. 자신의 생명 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받은 존재들인가.”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현대사회의 속성 속에서 매순간 불안에 떨며, 심지어 ‘자신이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인 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그 궁극적인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 지 피에르 라비는 간결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서 비늘을 떼어 내고 나무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용기를 이미 오래 전부터 잃어왔고, ‘대지를 사랑하며 존중하고 거칠게 다루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힘들여 일하고, 고난에도 울지 않을’ 자신감조차 잃어버렸기에 이렇게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주의 기운과 귀한 생명받아 태어난 존재로서 매순간 향기롭게 꽃피고 열매맺지 못한 채 오히려 뭇생명을 처참하게 위협하고 농락하는 것으로 스스로 밥을 빚어내지 못하는 부족함을 위선적으로 꾸미고 거만하게 가장한 채, 이 생의 시간과 공간을 회색건물과 아스팔트 위에서 오로지 돈만을 좇아 꿈꾸며 먹고 자고 다시 깨면서 소진해가는 현대인들의 돈바라기 인생……. 피에르 라비와 같이 영성이 온전히 맑고 향기로우며, 그 자비와 영성을 토대로 실천적 삶을 몸소 선보여주는 선각자이자 대승보살님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되고 복된 일이다.

그는 사소한 것에 경이로워할 줄 알고, 감동할 줄 아는 영성과 자비를 닦는 것이 용기있는 삶을 살기 위한 요건이라 말한다.

이를 되새기는 것은 아주 근본적이어서 더욱 소중한 교훈일 것이다.

한 뛰어난 삶과 선지적인 생애를 마주할 때마다 잊지 않고 새겨보는 것으로, 오늘의 피에르 라비가 있기까지 그의 정신적, 실질적 생의 반려자였던 미셸의 고귀한 의식과 생애를 간과할 수 없었다.

이 땅의 산업자가 아닌 농부로 불리기 바란다는 피에르 라비는 오늘날 뿐 아니라 세대를 더할 수록 비단 농부(農夫)가 아닌 농부(農父)로서 길이 기억되어야할 선지식이라 생각해 본다.


강희정 간사


한사람의 실천이, 그 실천에 따라 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일생이 이토록 감동을 주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작지만 사소한 것부터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별다른 가책없이 펑펑쓰던 물을 아껴 쓰겠다고 약속했다. 머리 감을 때, 샤워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무심코 버렸던 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절약해야겠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라비를 꼭 만나 뵙고 싶다. 그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마다않고 달려가 행동으로 말하고 보여주는 농부 철학자가 우리의 현실에 꼭 필요한 해답을 제시할거라 믿으며 피에르라비를 뵙고 싶은 바램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만트라 주문을 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행동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