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촌에는 신록과 함께 해바라기꽃이 밝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여기는 경기도 광주시 화계산의 어느 산자락입니다. 저는 아나운서 이계진입니다. 이곳으로 귀촌하여 날마다 밭에 가서 채소 가꾸고 차 마시고 책을 읽으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이는 한국아나운서클럽 이계진(78) 회장이다. 아마 육칠십 대 독자는 그를 잘 알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국민 아나운서’였기 때문이다. 1973년 KBS공사 1기 공채 아나운서가 된 후 ‘아침마당’ ‘TV는 사랑을 싣고’ ‘체험 삶의 현장’ 등 최고 인기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했다. 아나운서를 마친 뒤에는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하는 등 인생의 무대를 화려하게 살았다.
-언제 이곳에 들어오셨나요?
▶1996년에 들어왔으니 28년째 살고 있습니다. 제가 귀촌할 당시에는 전원생활이나 귀촌이 대중적이지 않을 때였죠. 하지만 지금의 ‘전현무급’이랄까, 프로그램 6~7개를 소화하던, 제일 잘나가던 시절 저는 이 산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잘 나갈 때 어떤 이유로 귀촌하셨던 건가요?
▶어떤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인생의 오후’를 어떻게 보낼까? 조명과 박수가 사라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살 방법이 무엇일까? 같은 물음이었습니다. 제 머리에는 어느 날 마이크를 내려놓을 날이 올 때 산수가 좋은 곳에서 잊힌 듯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최근에 책을 내셨는데, 제목이 ‘해바라기 피는 마을’이더군요.
▶해바라기는 자칫 멋없고 단순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꿋꿋하고 당당해서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의 블로그 이름도 ‘해바라기 피는 마을’입니다. 제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과 요즘 노인이 된 마음과 눈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들을 보태서 엮은 것입니다. 아, 그리고 해바라기는 제가 정치인으로 일할 때 강원도 원주에 많이 심고 싶은 계획이 있었던 꽃입니다.
-대중들은 ‘아나운서 이계진’을 기억할 것인데, 정치도 하셨던가 봐요?
▶저는 국회의원을 재선까지 했습니다. 제가 좀 알려진 방송인이었다 보니 정계로부터 정치에 입문하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많습니다. 계속 거절하고 있었는데, 어느 정권이 저를 방송에서 강제 하차시키더군요. 고심하다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지요. 두 번째 국회의원 때는 강원도지사 선거에도 나갔습니다.
-도지사 선거에도 나가셨다고요?
▶2010년이었지요. 하마터면 도지사가 될 뻔했으나 낙방했습니다. 불법선거 때문이었어요.(웃음)
-불법선거라고요?
▶네. 불법(佛法)선거입니다. 부처님 법대로 선거에 임했지요. 여론조사에 따르면 저는 우세하게 당선되었어야 했는데, 못되었어요. 이유는 제가 이해관계자들과 적절히 손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현실정치란 것이 표를 위해서는 결탁도 하고 금품도 만져야 했는데, 저는 그걸 못 하겠더군요. 이겨야 했지만 스님 가족 친구들 앞에서 부끄럽게 활동하여 이기고 싶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저는 법정 스님의 제자였기에 선거를 부처님 마음으로 했습니다.
2010년 강원도지사 선거는 유명했다. 그는 여론조사에서 많이 이겼으나 결국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는 후원금 받는 선거를 거부했다. 그 대신 블로그를 만들어 운동했는데 이것이 현실 정치에서는 수용되지 않았던 듯. 그의 낙선에 대해 언론에서는, 그가 경선에서 떨어진 사람의 손도 잡아주어야 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선거의 패배감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개표하는 날 밤을 새우고 이곳에 오니 새벽 4시였어요. 도와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몇 달 동안 마음이 힘들기도 했지요. 하지만 다음날 동이 트는 아침부터 밭을 갈고 일을 했습니다. 저는 법정 스님의 유발상좌였습니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의 이사였고요. 불법(佛法)선거를 잘 마쳤다고 생각하고 정리해 버렸습니다. 그 뒤 저는 정말 귀촌자가 되었습니다.
-2010년 후부터네요. 서울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활동하셨는데, 여기서 밭이나 갈고 지내는 게 쉬울 것 같지 않군요.
▶지금은 이렇게 반듯하게 정리되었지만, 당시에는 첩첩산중이었고 온통 돌산이었습니다. 여름에 비가 오고 나면 산에서 토사가 엄청나게 쏟아져 내려 지형을 변화시켜 버리기도 했죠. 여기서 9년을 사셨던 저의 어머니께서 ‘아비는 돈을 주고 돌을 샀다’고 하실 정도로 돌이 많았어요. 그러나 저는 수처작주(隨處作主), 말하자면 ‘어느 곳에 있든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귀촌을 결정하였기에, 자연 속의 안식처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는 일은 오직 즐거울 뿐이었습니다.
-사모님도 좋아하시나요? 하루의 일상을 말씀해 주세요.
▶이곳 생활을 아내가 더 좋아합니다. 아내는 농사 일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고요, 일상은 단순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화수 떠 놓고 기도 후 일과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28년간 마음 비우고 쉬엄쉬엄 서른 개 넘는 작물을 가꾸고 기르니 만사가 편합니다.
-그러면 서울에서 맺었던 인연들은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현재 모든 방송사의 퇴역 아나운서들의 모임인 ‘한국아나운서클럽’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간간이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 요청을 받고도 있고요. 그러니 일주일에 1, 2번은 서울을 오갑니다. 귀촌은 은둔이 아니기에 활동하던 도시에서 너무 멀어지면 안 되죠. 그러나 너무 가까우면 집값이 비싸니 귀촌지를 선택하실 때는 적정거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그 배치를 잘한 것 같아요.
-귀촌자가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귀촌 선배로서 말씀해 주세요.
▶최소한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 해야겠죠. 그리고 귀촌은 충동적이 아니라 절실한 마음으로 결정해야 하고요. 그 마음을 가족이 동의해 주어야 해요. 남들의 귀촌 생활이 좋아 보인다고 덜컥 해서는 아니 됩니다.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는 귀농과는 다르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채소나 식물들은 물을 잘 주어야 하기에 자정까지도 ‘급수공덕’을 한 적도 있습니다. (웃음)
-도시에서 살던 사람은 심심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맞아요. 그래서 즐기는 일이 있어야 해요. 저는 법정 스님의 책을 읽는 ‘무소유 책읽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7년 되었습니다. 회원이 35명 정도인데, 매달 20명씩은 서울 원주 청주 춘천 세종시 등에서 오셔서 수필을 읽습니다. ‘무소유’ 책은 현대판 불교 경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읽습니다. 이제까지 30회 정도 읽은 듯합니다. 책 읽기 모임에는 목사님도 오십니다. 우리는 종교를 넘어 같은 뿌리의 나무들입니다.
이계진 회장이 법정 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를 따라 들어가 본 한 건물에는 그가 활동하던 시절의 사진과 기념품들이 많이 전시돼 있었는데, 다른 한쪽에는 스님과 인연을 맺은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 보관돼 있었다.
-산촌에 계시는 입장에서 인생이모작기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사람들은 끝없는 탐욕을 부리고 남과 항상 비교하기 때문에 불행해집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이 없다는 자세, 자신감은 가지되 고집부리지 않는 자세를 익히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28년째 산촌에서 살고 있는 이계진은 자연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인생 사계의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와 태도를 지혜롭게 안 듯하다. 말하자면 선지자가 눅눅한 장마철 날씨 자체에 시비를 걸기보다 어떻게 보낼지를 헤아리는 것처럼, 그는 박수도 웅성거림도 많은 시절 부터 자신의 본성이 원하는 바를 찾아 스스로 주인 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방송 아나운서와 국회의원이라는 매우 돋보인 인생일모작을 뒤로하고 소중한 인연들과 끽다끽반(喫茶喫飯)하는 이 자세는 탐욕을 부리며 불행해하는 이 시대에 좋은 방향의 통찰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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