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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현의 싱글라이프] "강요하지 않는 마음이란" 길상사 템플스테이, 주지 덕조 스님과의 차담
- 이채현 기자
- 입력 2024.06.24 13:00
- 수정 2024.06.2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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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대웅전 [사진=이채현 기자][아시아에이=이채현 기자]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문득 조급해질 때가 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불현듯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평일 오후 두 시간, 길상사에 머물며 주지스님이신 덕조 스님과의 차담을 가졌다. 소소한 일상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 번뇌가 찻잎과 함께 여과되어 산뜻한 차 한 잔이 우려졌다.서울 종로와 대학로가 멀지 않은 곳. 번잡한 도심의 분위기가 삼청터널을 지나니 고즈넉한 세계로 이어졌다. 삼각산 남쪽, 길상사가 있는 곳이다. 수많은 천년고찰을 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길상사의 역사는 ‘신사옥’이라고 할 정도로 짧은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길상사에 많은 발걸음이 찾는 이유는 그만의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길상사의 풍경은 여느 사찰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일주문부터 사대천왕을 모시는 천왕문,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전통식 사찰구조에도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오방색을 이용한 다양한 벽화와 단청보다는 수수한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사진=이채현 기자] [사진=이채현 기자]그도 그럴 것이 길상사는 본래 대원각이라는 유명한 요정이었기 때문이다. 길상사는 1995년 시인 백석과의 러브스토리로 유명한 길상화 김영한 보살님이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10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희사하며 세운 사찰이다.처음에는 송광사말사 ‘대법사’로 등록하게 됐지만, 1997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대원각 시절의 모습을 유지한 곳이기에 전통 사찰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서 불자가 아니더라도 마음 편히 산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대웅전의 왼편, 작은 돌다리를 건너 주지스님 처소를 찾았다. 작은 문 너머 꽃과 나무가 있는 아담한 정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댓돌을 확인하고 있자니, 마루 위로 덕조 스님이 말간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길상사 주지스님이신 덕조 스님 [사진=이채현 기자]예법을 몰라 미처 적절한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것을 민망해하니 “괘념치 마세요. 모르는 이들에게 하라고 하면 벌일 뿐이죠”라며 오히려 다독이며 안채로 안내했다.주지스님이 계시는 곳을 방문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 물색없이 두 눈이 처소의 곳곳을 향했다. 뻥 뚫려있는 처소 내부는 사랑채 겸용 침실이 되는 곳이다.덕조 스님은 “생각보다 단출하죠? 이곳은 김영한 보살님이 생전 지내시던 처소입니다. 안쪽에 기둥이 보이는데, 막혀있는 곳을 트고 나머지는 원래 있던 구조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어렵고 엄숙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분위기가 한결 편하다. 덕조 스님의 친근한 말투도 그렇지만 불자가 아닌 기자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시는 이유다. 차담을 위해 찻잔이 준비된 탁자 곁에 앉았다.“어떤 차를 드릴까”라는 질문에 고민하다 “보이차”라고 하니 “그런 차만 있을 줄 아냐”면서 세련된 브랜드의 홍차를 우리기 시작한다.[사진=이채현 기자]물이 끓고 있는 사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렸다. 덕조 스님이 길상사 주지스님으로 오신 것은 지난 3월. 주지스님이 되신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사실 덕조 스님은 길상사와 인연이 깊다.스님은 법정스님의 맏상좌로 1997년 서울 성북동에 길상사가 창건된 뒤 12년 동안 법정 스님의 뜻에 따라 길상사 주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로 일했다. 이후 2009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행을 위해 다시 송광사로 갔다가 십여 년 만에 돌아온 것.오랜만에 돌아온 길상사와 세상은 덕조 스님께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님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부촌이었던 길상사 주변도 카페들이 많이 들어섰고요. 도시 구조뿐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 구조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라고 말했다.덕조 스님은 길상사 주지스님으로 돌아오신 후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계신다. 불자들과 함께, 외국인들이나 불자가 아닌 이들도 마음 편히 방문할 수 있는 길상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심 중이다.[사진=이채현 기자][사진=이채현 기자]스님은 “매체가 발달하면서 종교에 대한 신비도 많이 걷혔어요. 그럼에도 절이나 성당에서 스님이나 신부님과 대화하기에는 벽이 너무 높은 것 같아요”라며 “템플스테이에 많은 분들이 찾아오는 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스님과 차담 시간을 꼽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간을 만드는 데 많이 할애하고자 합니다”고 말했다.“기자들은 수명이 가장 짧고 종교인들은 수명이 가장 길다는 데이터를 본 적 있어요. 아마도 마감 스트레스 등으로 일희일비하며 살기 때문인 것 같은데, 종교인으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기자가 물었다.덕조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종교인들도 마감 스트레스는 있지요. 저만해도 당장 곧 있을 법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될 때가 많아요. 인생의 주인으로서 다만 각자 그 소명을 다 하면서 살아가는 거지요”라고 말했다.이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처럼’이라며 비교하지 말고 내가 머무는 곳에서 주관을 잃지 않고 주인이 되면 그 자리가 모두 참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덕조스님 [사진=이채현 기자]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기자의 손끝에 스님의 눈길이 닿는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기자처럼 덕조 스님도 여행을 좋아하신다. 스님은 그동안 다양한 여행지를 다니시며 수필집을 출간하는 외에도 티베트, 인도 등에서 사진전을 열었다.30년 전 법정스님께 카메라를 선물 받은 것이 그 계기였다. 짧은 인생에서 하루도 같지 않은 ‘지금의 찰나’를 사진으로 기록해 ‘영원’으로 간직하는 것. 그러면서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고 되새기게 된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덕조 스님의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인도’다. 스님은 “신도 중 하나가 사춘기 아들에 대해 고해하길래 인도로 보내라고 한 적 있어요. 불편한 여행을 적응하며 나 자신을 깨닫고 돌이켜 보는 거죠. 그것 자체로 엄청나게 큰 공부라고 생각하거든요”라고 설명했다.이어 “대부분 인간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것을 얻지 못해 불행해합니다. 여행을 통해 종이 한 장 차이인 삶과 죽음 사이에서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곳에 살고 있는지. 소유한 것에 대해 만족할 수 있게 되죠. 그래서 여행을 추천합니다”라고 덧붙였다.길상사는 쉽게 오갈 수 있는 사찰이기에 많은 이들이 점심공양을 하러온다. 때때로 봉사를 하러온 신도들로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할 때도 있지만, 덕조 스님은 ‘그대로 두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말한다.스님은 “‘각자 알아서 하세요’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각자’는 한문으로 깨달을 각(覺)에 각자 자(者)를 씁니다. 각자는 깨달은 사람, 즉 부처님이라는 뜻이에요. 내버려둬도 모든 사람이 각자 깨달은 자로서 스스로가 알아서 한다는 얘기지요”라고 말했다.이어 “모든 것은 주고받게 되어 있습니다. 강요하지 않아도 어릴 적 크리스마스에 성당에 가서 받았던 사탕이 마음속에 남아 따뜻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점심공양을 받은 분도 언젠가 다른 누구에게 베풀어주는 것으로 보답할 수 있는 것이죠”라고 덧붙였다. 마리아상을 닮은 관음보살상 [사진=이채현 기자]덕조 스님은 종교의 의미가 퇴색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불교의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종교도 시대정신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길상사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실행하고 있는 곳입니다. 길상사를 걷다보면 천주교도인 최종태 조각가가 만든 관음보살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시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의 교유의 결과물인데요. 종교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했다.스님은 “이곳을 찾는 분들이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강요하지 않고 두는 것. 그래서 복잡한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이 사찰을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라며 마지막 차를 따랐다. 두 시간 남짓의 차담. 마지막 차를 단숨에 마시고 나니 마음의 불순물도 가라앉는 기분이다.출처 : 아시아에이(http://www.asia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