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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06-07-01

    2006년 5월-<정원일의 즐거움>

본문

부산모임 5월 독서모임은 유재경 회원님과 사무국 가족들 3명이 함께하였습니다.


강희정 간사


책 구하기가 이렇게 힘든 줄 처음 알았다. 항상 그랬듯이 이번 숙제도 시험 전날 벼락치기 하듯 하게 되었는데..세상에 이런 일이...서점에 책이 없었다. 부산시내 유명 서점들과 인터넷 서점 등 책을 구할 수 있는 경로를 알아보았으나 재고가 없었다. 갑자기 책 수요가 늘어 출판사는 책을 새로 인쇄한다고 했다. 아무튼 독서모임 하는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책은 못 구하고.. 그래서 과장님 책을 빌려서 부랴부랴 읽고 독서모임에 참가했다.

독서모임에 참석한 회원님도 책을 구입하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회원님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고 하셨다. 나는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사진들을 보면서 헤르만 헤세와 법정스님이 참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백년도 넘는 시간 전에 살았던 헤르만 헤세가 참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내 손으로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물을 주고 하면서 정성스레 나무나 꽃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집에 있는 작은 꽃밭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포도넝쿨, 수세미넝쿨 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때, 집 뒤에 있는 밭에서 가꾼 채소들을 먹으면서도 그 고마움들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새삼 내 주위에 있는 꽃, 나무, 채소 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꾸는 아빠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서 꽃밭을 가꾸고 채소밭을 가꾸는 것은 모두 아빠의 몫이었다. 밭에 쪼그리고 앉아 벌레를 잡고, 땀을 흘리며 밭에 물을 주는 장면들이 스쳐갔다.

집안에 작지만 꽃밭을 가꿀 수 있고, 집 뒤에 있는 밭에서는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우리 동네가 참 정답고 고맙다. 그런데 우리 동네가 재개발된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당장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그 말을 들으니 참 서글퍼진다.


김윤정 과장


나는 나무나 식물 가꾸기를 좋아한다. 잘하지는 못해도 그들 곁에 있는 것이 즐겁고, 기쁘다. 그래서 ‘정원 일의 즐거움’이라는 책 제목을 받았을 때부터 흔쾌했다. 게다가 ‘우리의 헤세’ 작품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내 내가 맛보았다고 느끼는 나무나 식물 가꾸기의 즐거움은 ‘수박 겉핧기’ 정도의 피상적이고 가벼운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크고 작은 화분에 모종이나 작은 아이들을 가꾸는 정도의 경험이 고작이니 말이다. 그래서 흙을 일구어 씨뿌리고, 가꾸어 꽃피우고 열매맺는 수확의 참기쁨을 맛보지 못했으므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흙의 냄새도 알지 못하고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뿌리고 거두어보지 못한 인공적이고, 부분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언젠가는 뒤뜰이 넓고 마당이 큰 시골집에서 살겠다는 계획, 한편으로 희망을 되새겨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예술가로부터 빚어진 작품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그 생명력과 감화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자연인이 되는 것,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만이 어쩌면 진정한 예술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헤르만 헤세의 간결한 글들은 법정스님을 자꾸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도 법정스님이 남성적이고 동적이라면, 헤세는 보다 여성적이고 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동양적, 불교적인 색채는 두 분의 공통적인 느낌이라고 독자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현대인들의 음악성이란 전축을 소유하는 것이고, 반짝거리게 니스칠이 잘된 자동차가 그들에게는 아름다움의 세계에 속하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만족하고 즐기는 반쪽짜리 인간들...’이란 문구를 접할 때는 등골이 서늘한 기운이 섰다.

시대를 뛰어넘은 예술가들에게는 시대를 넘나드는 심미안과 깊이있는 관조, 확고한 사상이 갖추어져 있음을 다시금 알겠다.

더욱이 관심있게 지켜본 것은 지난 시대의 예술가들은 그야말로 종합예술가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뛰어난 학자이면서 동시에 화가이며, 시인이자 음악가인 옛 예술가들의 삶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그런 전인적이고 통합적인 예술가로서의 모습보다는 특정 부문에 집중된 예술가로서의 모습이 일반적인 것 같다.

모든 것이 소외되고 소외시키는 그런 시대로 변화되어 가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 혹은 대안을 우리는 헤세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만, 들으면서 고개 끄덕이고, 읽으면서 감동받고 자리를 뜨면서 아니면 책을 덮으면서 동시에 지워버리고 잊어버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