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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06-02-07

    2006년 2월-<걷기예찬>

본문

2월의 독서모임(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을 저희 부산에서는 입춘인 2월 4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30분가량 본 모임 사무국에서 가졌습니다.

1월의 독서모임에 참가하셨던 김순덕 회원님이 이달에도 참석하셨습니다. 지난달 독서모임 주제도서였던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에 소개되었고, 근래 법정스님께서 즐겨들으신다는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배경음악으로 감상하면서 자기 이름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담아 자기소개하는 삼행시 짓기를 해보았고, <걷기예찬> 내용 중 '혼자여행을 떠나는 이의 짐꾸러미'를 각자 꾸려보기도 했으며, 저자에게 '걷기'처럼 참자아를 발견하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는 무엇인지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짧았지만 편안하게 느낀 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순덕 회원


길 떠나는 문턱에서


-인간의 두 발은 써먹을 기회가 드물어서 많은 경우 처치곤란한 존재가 되어버린 나머지 조그만 가방 속에 담아 한 쪽으로 치워놓아도 괜찮을 것 같아 보인다.


-걷기는 별 것 아닌 작은 일들에 대한 기본적 존재철학의 발전에 알맞는 것이다. 걷는 동안 여행자는 자신에 대하여 자신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하여, 혹은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하게 되고 뜻하지 않은 수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바쁜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가로이 걷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시간과 장소의 향유인 보행은 현대성으로부터의 도피요 비웃음이다. 걷기는 미친듯한 리듬을 타고 돌아가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질러가는 지름길이요 거리를 유지하게 알맞는 방식이다.


-나의 의도는 오히려 가슴 뿌듯한 기쁨을 안고 기꺼이 걷는 걸음에 대하여 애기하는 데 있다. 만남과 대화를 가져오는 걸음, 시간을 음미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멈추거나 가던 길을 계속하는 그런 걸음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즐거움에로의 초대일 뿐 잘 걷는 방법의 안내가 아니다.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그 고즈넉한 즐거움.


-걷기는 어떤 정신상태, 세계 앞에서의 행복한 겸손, 현대의 기술과 이동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즐기는 센스를 새롭게 해준다.


-걷는 사람은 시간의 부자다. 그에게로 한가로이 어떤 마을을 찾아들어라. 휘휘 둘러보고 구경하고 호수를 한바퀴돌고 강을 따라 걷고 야산을 오르고 숲을 통과하고 짐승들이 지나가는 목을 지키거나 혹은 어느 떡갈나무 아래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자신의 하나뿐인 주인이다. 그는 자신의 원소 속에 몸을 담그고 있듯이 자신의 시간 속에 몸담고 유영한다.


-소로는 처음부터 생각이 뚜렷하다. 그는 이렇게 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취미는 자연을 멀리함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산책함으로써 얻게 되는 저 심오하고 신비한 그 무엇보다 작별인 것이다.


-스티븐슨이 자주 인용하는 '내가 혼자일 적만큼 덜 외로운 때는 없는 것이다. 나는 걸으면서 동시에 말을 하는 것이 지성의 증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들판에 나가면 들처럼 식물이 되어 지내고 싶다.


강희정 간사


책의 머리말에서부터 책읽기가 힘들어졌다. 보통 머리말은 편안히 읽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막히면서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그냥 읽었다. 마음으로 느끼거나 머릿속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읽은 것이다. 제목만 봤을 땐 아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에 솔직히 당황되기도 하고 내가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숙제가 아니고 내 의지에 의해 책을 골라 읽는다면 첫 장도 펼쳐보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 평소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더 솔직히는 싫어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걷기는 그냥 이동의 한 수단이지 다른 의미로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책의 저자나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공허하게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독서모임을 하고 나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걷기를 좋아하는, 걷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속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책만 읽고 독서모임을 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내게 죽어 있는 책이 될테지만 독서모임을 통해서 이번에 남은 숙제도 열심히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있는 걷기의 즐거움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 것이다. 몸을 움직여서 집 근처의 공원을 산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김윤정 과장


<걷기예찬>은 이전에 읽었던 책이다.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할테지만 재감상의 느낌은 첫감상 의 느낌과 사뭇 다르다. 특히 독서모임을 위해 한 문장 한 구절 좀 더 집중해서 읽으면서 아~이런 구절도 있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감탄을 여러번 터트렸다.

그러나 변함없이 느끼는 소감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격언집같다는 점과 건조체에서 느낄 수 있는 여백의 맛은 여전하다. 그래서 다비드 르 브르통의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김 훈 선생의 산문집들을 읽을 때와 비슷한 희열이 있다. 마치 건빵을 오래동안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다 삼킬 때 느끼는 단백함. 그래서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는..

개인적으로 혼자 여행하기나 걷기를 무척 좋아하는 입장에서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을 읽는 동안 '맞다 맞어!'를 연발하였는데, 어느 순간 오히려 아주 맘이 잘 맞는 친구가 내가 아직 말하지 않은 속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는 듯 들어 주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 곳에 집중하기 위해 에돌아가는 것을 뜻한다.(2면)


-걷는동안 여행자는 자신에 대하여 자신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하여 혹은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하게 되고 뜻하지 않은 수만은 질문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14면)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21면)


-두 발로 걷다보면 자신에 대한 감각, 사물의 떨림들이 되살아나고 쳇바퀴도는 듯한 사회생활에 가리워지고 지워져 있던 가치의 척도가 회복된다. 걷는 사람은 인간적인 높이에 서 있기에 가장 근원적인 인간성을 망각하지 않는다.(25면)


-걷기는 사물들의 본래 의미와 가치를 새로이 일깨워주는 인식의 한 방식이며 세상만사의 제 맛을 되찾아 즐기기 위한 보람있는 우회적 수단이다. (44면)


-침묵을 만들어내는 것은 소리의 사라짐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는 자질, 공간에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의 가벼운 맥박이다.(71면) -침묵은 인간의 마음 속에 돋아난 쓸데없는 곁가지들은 쳐내고 그를 다시 자유로운 상태로 되돌려놓아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76면)


-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은 털어낸다. 걷기는 세계를 사물들의 충일함 속에서 생각하도록 인도해주고 인간에게 그가 처한 조건의 비참함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길을 걷는 것은 장소의 정령에게 자신의 주위에 펼쳐진 세계의 무한함을 바치는 끝없는 기도의 한 형식이다.(237면)


-길을 걷는 것은 때로 있었던 기억을 다시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걷다보면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여유가 생기게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걷는 것에 의해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트이고 추억들이 해방되기 때문이다.(2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