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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07-04-03

    2007년 3월-<소동파, 선을 말하다>

본문

지난 3월 29일 부산모임에서는 독서모임을 가졌습니다.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처음으로 사무국 아닌 바깥으로 나가 소감을 나누는 자리를 가져보았고 모두의 반응이 아주 좋아 향후 점차 자연 속이나 근교 등 야외모임을 많이 가져보고자 합니다. <소동파, 선을 말하다>라는 귀한 책을 읽고 모여 나눈 소감들을 정리해봅니다.


유재경 회원님


‘소동파 선을 말하다’는 소동파의 시와 저자의 선적인 해설로 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천여년 전의 소동파라는 너무나 유명한 시인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다. 이름을 남긴 성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소동파도 안빈낙도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보냈다. 학문과 불교로 평생을 보낸 멋쟁이 소동파는 그에 걸맞는 많은 스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여러 종교와 학문들의 교류가 활발했나 보다.

얼마나 높은 안목이 있어야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지 부럽고 존경스럽다. 동생 소철과의 남다른 형제애, 관리로 있으면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자비심, 계속되는 역경 속에서도 평생 학문을 사랑하는 점 등, 우리나라의 정약용 선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다보면 옛시인 묵객들이 사랑하는 강, 달, 나무 등이 자주 나온다.

옛시인들은 이런 자연을 보고 절로 시를 지었는데 요즘의 우리들은 너무 삭막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옛사람들의 안목과 여유로움이 부럽다.

불교에서는 선은 본인이 체험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는 이 책을 통해 선의 맛을 조금 봤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좋은 글들 중에 ‘무심일 때는 매우 즐거웠으나 유심일 때는 번뇌가 끝이 없다’ 불인스님이 소동파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통 사람이 선을 공부하면 반드시 부처나 조사가 되지는 못한다 해도 여유롭고 넉넉한 인생은 보낼 수 있다’ 등은 기억에 담아놨다가 생활에 응용하고 싶다. 소동파는 어려울 때 선이 지주였다라고 하는데 누구든 선수행을 한다면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다. 종교를 초월해서 정말 좋은 공부이고 인생의 근본인 것 같다.


김순덕 회원님


소동파는 귀에 익은 이름이지만 내가 아는 그는 교과서에서나 배운,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앎이 전부였다. 한 권의 책으로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는 나의 욕심에는 못 미치지만 마음공부 중인 나에게 ‘禪을 말하는 소동파’라는 주제는 나로 하여금 자못 설레게 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소동파가 되어 차 한 잔 옆에 두고 시와 사를 읊어 보기도 하고, 또 감회에 젖어보기도 하여 그가 차츰 선의 경지에 다다르려 할 때 나 또한 기쁘고 행복했다.

비록 소동파가 오대시안으로 많은 고초를 당하지만 그것이 그가 선과 하나되는 밑거름임을 짐작한다면 어려움 앞에서 쉽게 좌절하고 절망 하에 때로는 자살로 이어지는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스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을 통한 생활의 작은 여유와 마음의 고요를 우리들에게 권고하시려는 스님의 배려를 느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무튼 생활 속에서 선을 실천하는 것이, 모든 것이 가만히 앉아서 경전과 위대한 선사들의 귀한 법문을 접한 송구함의 답례라 여기며 새삼 내 작은 마음의 그릇을 보게 해주신 스님께 두 손 모아 합장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강희정 간사


평소 선이란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쉽게 다가오지도 않는 것이었다. 어렵게만 생각되고 너무 추상적인 개념의 책을 읽어야 함에 대해 겁도 나고 부담감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는데 쉽지가 않았다. 진도도 나가지 않고 본문에 소개되는 소동파의 “시”와 “사”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책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 읽는데 목적을 두고 정신없이 읽었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나오면서 길게 한숨이 나왔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책을 읽을 때 내가 뭔가를 느껴야 하고 뭔가를 말해야함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히 책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소동파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그 과정에서의 역경,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소동파의 삶의 자세가 참으로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는 걸 모르고 책을 읽어내는데 바빴던 것을 반성했다.

본문 중 “인연을 중시해서 인연에 집착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고, 인연을 담백하게 보고서 인연이 오면 편안히 받아들이고 가면 웃으면서 배웅하는 것이 선 수행자이다”라는 문장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보통의 우리는 인연이 무엇이라서 거기에 집착해서 담백하게 받아들이고 웃으며 배웅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김윤정 과장


소동파의 작품집과 백석시인의 작품집은 훗날 꼭 마련하여 찬찬히 읽어보리라는 마음을 가졌던 지난 날이 있었다.

백석시인의 작품집은 작년에 구입하였고 이번에 이렇게 예기치 않게 소동파의 작품집을 접하게 되어 나름 기꺼운 마음이 컸다.

‘삼소부자’, ‘당송팔대가’라는 수식어가 늘 함께 하는 소순, 소식, 소철 선생의 작품세계는 너무 깊고 커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높은 경계의 것으로 생각하던 나의 생각을 <소동파, 선을 말하다>라는 책을 통해, 스야후이 선생의 편안하고 입체적인 해설을 통해 새롭게 전환할 수 있었던 점이 매우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넓은 지식과 깊은 학문 세계를 전제로 한 소동파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소동파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매력, 사고의 유연함과 넓은 포용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선(禪)’이라는 큰 화두에 부담없이 다가가게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농민의 힘겨운 삶을 헤아리고 개인적 영달에 눈이 먼 관료들을 풍자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시니컬하면서도 통쾌하고, 죽음을 각오하면서 써 내려간 시들은 큰 배움을 터득한 이로서의 시대적 책임을 당당히 짊어졌음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저자 스야후이 선생이 소동파의 작품세계를 선의 수행 과정에 따라 구분한 것이 마치 주인공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위인전을 보는 듯 흥미로웠고, 주인공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무조건적인 예찬론이 아니어서 더욱 부담없고 진솔하게 다가왔다.

당시의 시는 노래를 위한 사(詞)로 지어진 것들이어서, 이 사는 과연 어떤 음률로 읊조렸을까 혼자서 상상의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고 소동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울고 웃기를 거듭했다.

버려진 아이 관가에 데려다 키우는 인간적 따듯함과 시대를 앞서가는 사회복지적 가치, 그리고 깊은 자비심!

소동파가 고대광실보다 작디작은 한 칸의 선방이 하루 종일 편안하고 쾌적하다고 적은 글귀를 읽으면서 이 책을 우리에게 권하신 법정스님은 얼마나 깊은 심정적 일치감을 느끼셨을까 하는 생각도 문뜩 떠올랐다.

귀하고 귀한 책을 접하게 된 기쁨이 이 책을 권해주신 법정스님과 좋은 책을 써주신 작가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으로 거듭거듭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