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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07-10-04

    2007년 9월-<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본문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김순덕 회원님-


재미로 친다면 아주 재미있는 책이고 지루하다면 정말 지루한 책이다.

마을 자치에 대한 세세한 요소들을 읽으면서 간디가 얼마나 여기에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지 짐작이 간다.

간디는 말했다. 농업경제 속에서 의료와 교육은 발전을 해야만 한다고.

그러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는데 낙후된 경제 속에서 의료와 교육만이 발달할 수 있을까?

간디가 제시하는 마을 스와라지는 지금의 우리에겐 일종의 ‘수행’을 생활화해야만 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종교와 상관없는 진정한 종교적인 생활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불어 닥치고 있는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온갖 자연재해는 간디의 제안을 요구하고 있다.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 그 마을 스와라지가 어쩌면 물질만능주의와 욕망으로 가득 찬 소비주의, 그리고 인간성 상실 시대의 열쇠일 것이라는 느낌이다.

비록 그 길이 힘들더라도 이 시대에 다듬어 진 마을 스와라지를 꿈꾸면서 국가와 도시가 하지 못한다면 나만의 스와라지는 어떤지 제안하고 싶다.


-김윤정 과장-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를 읽으면서 문득 피에르 라비와 간디가 말하는 농사법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농사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내가 보기에는 흡사하다 못해 아주 똑같게 느껴졌기에 한살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회원님께 여쭈었더니 한 순간의 주저도 없이 ‘똑같아요’ 한다.


“우리나라는 5천년 농사기술을 가진 지혜롭고 자랑스런 민족이죠”하는 덧붙임 말과 함께……. 인도의 독립보다 자립을 민족이 처한 근본적인 해답으로 생각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도의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던 마하트마 간디를 보며 김구선생이 떠올랐고 상세하고 실천적인 저술내용을 훑어보며 우리나라의 실학사상과 다산 정약용 선생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인도인들의 바푸, 간디는 자신의 주장이나 제안, 사상이 이상적이며 실현가능성이 적거나 실질적으로 장애가 매우 많은 어려운 일임을 스스로 알고 있어 매번 ‘천천히, 느리게,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마을이 세계를…>를 통해 비단 간디의 이상이 지나치게 이념적이라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아님을 퇴비제조 공정(인도레 식물산업연구소)에서부터 위생, 식사 등에 관한 사항까지 세세히 정리한 것을 통해 여실히 보여 준다.

그리하여 그는 리더이자 지도자, 우상적 존재로서가 아닌 아주 가깝고 구체적인 한 인물로 흡족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가 그야말로 ‘마하트마 간디’이자 ‘바푸’일 수 있었던 점은 그 어떤 모습보다도 그의 부단한 정진과 쉼 없는 구도의 자세에서 기인되었다고 생각된다.

인도가 영국의 통치를 받는 것은 ‘위대한 앵글로 색슨족’의 지배를 받는 것이므로 소중히 여겨야 할 유산이며 ‘인도의 모국인 영국’에 대한 충성을 공공연히 활자화(「인디언 오피니언」-간디가 발행한 첫 신문)하고, 영국의 남아프리카 전쟁에 ‘충성스러운 신하로써’의용군을 두 차례나 모집하여 몸소 참가했던 젊은 날의 간디.

남성 우월주의적이며 권위적, 자기중심적이며 어리석은 질투와 의심으로 아내 카스투르바이를 ‘철저히 비참하게’ 내팽게 쳤던 남편 간디.

가족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영국식 의식주 생활을 강요하던 화려하고 독선적인 변호사 간디. 그가 젊은 날의 그릇된 모습을 떨쳐내고 위대한 영혼으로 영원히 기억 되는 것은 그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도하고 비폭력(아힘사)‧ 스와라지‧ 스와데시를 펼쳤던 점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유럽, 기독교를 선망하던 모습을 돌이켜 힌두교도로 태어나서 자란 인도인으로서의 자신으로 각성할 수 있었던 것.

한 사람의 정치가에서 한 사람의 수행자로 변모하여 쉼 없이 정진해 갔던 것.

인도내 이슬람과 힌두교의 갈등을 종식시키려 평생을 헌신한 것.

카스트 제도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풀뿌리 민중(하리잔)의 삶을 돌아보며 그들의 자립을 고민하고 수행의 목표로 삼았던 것 그러한 그의 비범한, 철저한 자기 각성과 수행의 삶이 그를 영원히 지지 않는 영혼으로 이끌게 한 것이라 본다.

<마을이 세계를…>를 통해 마하트마의 수공예를 통한 전인교육(나이탈림)은 스스로 혁명적 제안이며 상당한 자신감으로 제시한다 하였는데, 나이탈림은 매우 합리적이며 선지자적인 주장이라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또한 ‘통화’에 대한 내용과 ‘퇴비’에 대한 내용은 개인적으로 동의와 공감을 가지는 바이다.

그러나 ‘도시들은 스스로를 돌볼 능력이 있다. 오히려 돌볼 능력이 없는 마을을 돌봐야만 한다’ 간디의 주장은 당시 인도의 상황을 보아 그럴 수 있겠다 여기면서도 일반적인 상황에서 본다면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한다.

산업화의 결과물중 하나인 '도시'는 애초부터 자립성이 결여된, '마을'의 수혈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기생성을 가진다고 본다.

오늘날 기생의 정도가 지나쳐 마을은 생명이 고갈될만큼 착취당하고 도시는 피둥피둥 부풀어 ‘종기나 부스럼’이 되어 있지 않은가.

지나치게 거대해져 기형 같아진 산업주의, 자본주의 시대에 “모든 진정한 윤리학은 동시에 좋은 경제학이 되어야만 한다”는 그의 말은 귀하다.

하리잔을 위해 물레의 보급을 한 평생 부르짓던 간디의 삶의 궤적이 이 한 구절에 농축되어 있는 것 같다.

한편, 간디가 비폭력주의를 형성함에 있어 존 러스킨과 함께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바가바드 기타>를 비롯한 간디가 속한 인도와 힌두교의 경전에서 지대한 감명과 영향을 받았노라 고백하고 있으니 어찌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레가 한 바퀴 돌 때마다 평화와 선의와 사랑이 풀려나온다고 확신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장려했던 간디의 차르카(물레).

그는 비록 그가 그토록 사랑한 조국 인도의 독립이 아닌 자립, 인도 국민의 아힘사의 실현,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화합과 공존을 보지 못하고 떠나갔지만 그의 뜻대로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이 세상을 ‘그. 만. 큼. 비. 폭. 력. 적. 인. 사. 회. 의. 실. 현’에 기여했으며, 사랑과 선의, 비폭력을 통한 그의 물레는 지금도 계속 돌아가며 '평화와 평등의 카디'를 짓고 있음을 알겠다.


-강희정 간사-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냥 무조건 읽었다.

그러다 보니 책을 보기만 하면 잠이 왔다.

내용을 잘 모르면서 계속 읽으려고만 하니 당연히 재미가 없고 그러다 보니 잠이 오는 것이 당연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 이 책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재미없는 책이기도 하구나 라는 것을 알았을 때 참 기뻤다.

나만 그런게 아니였어... 그러니까 괜찮아... 이런 생각을 하고 다시 한번 서문을 읽을 때 그제야 이 책이 마냥 재미없는 책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간디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간디의 마을자치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책을 읽고 공감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소중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위대한 민중의 스승이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민중의 행복을 위해 풀뿌리 민중의 삶의 온갖 세부적인 부분까지 자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행동했던 것에 대해 새삼 감동하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되풀이 되는 질문과 안타까움은 위대한 민중의 스승은 왜 다 암살을 당했어야만 했을까... 간디도, 우리나라의 김구 선생님도.

그 분들이 좀 더 오래 오래 그 뜻을 펼쳤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좀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행복한 민중이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 매번 독서모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독서모임을 같이하는 회원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