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박진환의 풍시조] 무소유(無所有)와 유소유(有所有)
박진환 시인·조선문학사 대표
법정스님이 입적했다. 스님이 남긴 ‘무소유’가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무소유란 소유함이 없음이니 유(有)와 대응되는 공(空)의 개념을 지닌다.
공은 곧 불(佛)로서 사마강한(司馬江漢)에 의하면 불이란 석가가 이름 지은 것으로서 하늘의 대기 곧 허공을 말한다. 이를 무라하고 불이라고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이란 불가의 말이 있다. 무색계사천(無色界四天) 중 셋째 하늘은 이름인데 식무변처(識無邊處)에서 소연(所緣)이 전혀 없는 줄로 보아 무소유의 해(解)를 얻고 그 수행한 힘으로 나게 되는 하늘을 의미한다.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수많은 현실은 모두 인연에 따라 생긴 것으로, 그 실체가 없고 자성이 없는 것이라고 보는 천태종(天台宗)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의 하나인 공관(空觀)과도 잇대이는 무소유는 불교적 구도의 높은 경지에서만이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높은 덕목의 하나인 청정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무소유는 모든 사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만이 누리는 정신적 풍요이자 섭심(攝心)만이 벗할 수 있는 가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정스님이 입적한 곳이 길상사다. 길상이란 복덕을 내림이니 복덕 또한 마음을 비운 무소유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비의 산물로서 사리사욕을 버리지 못한 이기심으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비움의 공간인 무소유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함 때문이다.
비우지 않고는 채울 수 없고, 채우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는 이치가 곧 무소유로서 불교에서 말하는 상식에는 어긋나지만 도로써는 터득될 수 있는 진리가 곧 무소유다.
불교에서 말하는 반상합도(反常合道)란 상식에는 반하나 도에서는 진리가 된다는 이치다. 법정스님이 말한 가지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풍요나 여유 또한 이와 다름이 아니다.
있고 없음을 넘어선 곳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 갖고 갖지 않고를 넘어선 곳에서 비우고 채울 수 있는 충만, 그것은 물질의 개념이 아닌 정신적 각(覺)이나 깨달음의 진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빈 것으로 충만을 누릴 수 있는 무소유는 정신적 각을 통해서만 깨닫고 획득될 수 있는 것으로서 이를 몸소 실천하다 간 고승의 무소유가 유언처럼 만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두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다행한 일이다.
애써 가지지 않음과, 없어서 가지지 못함도 무소유일까.
가지지 않았건, 가지지 못했건 둘다 가난은 가난인데
이 가난 풍요로 알고 벗하니 결국 가짐이 되는 유소유 아닐는지
박진환 시인·조선문학사 대표
기사입력 2010.03.20 (토) 10:09, 최종수정 2010.03.19 (금)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