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 법정(法頂)
내가 화장실에 주로 들고 갔던 책은 법정스님의 저작들이었다.
‘무소유’, ‘서 있는 사람들’….
스님의 책은 종이와 활자가 아니라 한 잔의 정갈한 녹차와 같았다.
- 故김수환 추기경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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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참나무 장작으로 만든 ‘빠삐용 의자’
참된 ‘무소유’ 정신 깃든 특별한 물건!
<법정스님의 의자>에 등장하는 의자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깃든 특별한 물건이다. 일명 ‘빠삐용 의자’로 불리는 이 의자는 불일암에 거주하던 시절에 교외에 나올 일이 있을 때 종종 극장을 찾아 조조영화를 봤을 만큼 영화를 즐겼던 법정스님이 당시 영화 ‘빠삐용’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것. 참나무 장작개비로 손수 만든 이 의자는, 자연에서 얻은 소중한 산물이기도 하다. 이 의자가 지닌 상징성은 소설 ‘무소유’에서도 그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의자 이름은 지어둔 게 있어. 빠삐용 의자야,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는 거야.”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진정한 나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참된 행복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휴식과 치유의 의자인 것이다. 이렇듯 의자를 매개체로 하여 법정스님의 ‘무소유’ 삶 그 자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법정스님의 의자>는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며 하루하루 바쁘게 흘러가는 삶에 지쳐 있는 모두에게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안겨줄 것이다. 어느 한 곳 기댈 곳 없이 지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투박하지만 안락한 의자 하나 내어 주며 상처받고 지친 모두의 마음을 채워줄 것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진정한 나눔, 자비의 삶을 실천한 ‘무소유의 삶’ 법정
법정스님이 한 평생 실천했던 무소유의 삶은 진정한 나눔의 삶이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뜻이 아닌 필요한 것만 가지라는 뜻이었다. 가장 유명한 수필집인 ‘무소유’ 출판 후 그가 처음으로 받은 인세는 오십 만원. 그는 그 돈을 뜯어보지도 않고 봉투째 장준하의 유족에게 전했다. 큰 딸아이 시집 보낼 돈이 없다는 딱한 사정을 듣고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가 출판한 책의 모든 인세는 그렇게 진정한 나눔의 의미로 쓰여진다. 가톨릭 신자인 문헌철 교수와의 특별한 인연도 나눔으로 인해 더욱 깊어진다. 그가 대학생이었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어느 날 법정스님을 찾아가 묻는다. “꼭 대학을 다녀야 합니까? 대학을 안 다니고도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의 물음에 법정스님은 한마디를 남긴다. “베토벤에 가보라”. 베토벤은 광주에 있는 고전음악 감상실로, 법정스님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창구였다. 법정스님의 이 같은 행동은 자신이 행한 덕이 남에게 돌아가기 원하는 ‘회향’ [回向, 일정기간 수행하여 선근과 공덕을 쌓으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어 자타가 함께 깨달음의 성취를 기하는 것]의 정신을 온 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법정은 불자들에게도 늘 회향 정신을 강조했다. 얻었으면 주라는 뜻이다. 그런 그도 단 한 곳 속가의 가족들에게만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했는데, 형편이 어려워 도와달라는 가족에게 중이 돈이 어디 있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은 그의 중다움을 다시 느끼게 하는 일화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물건 몇 개만을 곁에 두고 그 외의 것은 모두에게 내어준 그의 진정한 무소유 삶은 우리네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종교를 초월하여 사랑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그들
故김수환 추기경, 이해인 수녀와 나눈 가슴 따뜻한 우정
법정스님은 생전에 故김수환 추기경과 이해인 수녀와 종교를 초월한 우정을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12월, 법정스님이 길상사 개원법회를 열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길상사를 찾아 축사를 해주었고, 이에 대한 화답으로 법정스님은 이듬해 <평화신문>에 성탄절 메시지를 기고하고, 명동성당에서 열린 특별강론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 추기경의 넓은 도량에 보답하기 위해 참여했다.”고 소감을 밝힌 그는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인연과 천주교의 뜻에 감사한다는 말을 함께 전하며 종교를 뛰어넘는 화합의 마음을 전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도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추모사를 한 매체를 통해 전하기도 했다. 한편 이해인 수녀와는 편지로서 왕래하며 우정을 키워나갔다. 이해인 수녀는 법정스님 입적 후, 그를 기리는 추모사에 ‘야단을 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니처럼 늘 제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라며 법정에 대한 그리움을 남기기도 했다.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이해인 수녀의 종교를 뛰어넘은 아름다운 우정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따뜻한 울림을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