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후원하기 나의후원

부산

    • 10-05-30

    무주 진안 사찰 순례기 2 - 안국사

본문

미리 주문해 둔 산채 정식으로 꿀맛 같은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이제 무주 적상산에 위치한 <안국사>를 찾아갑니다.


5~6년 전에 유적답사 때 한번 다녀간 기억이 있는 안국사는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고지에 위치해 있어


꼬불꼬불 좁고 위험한 산길을 아슬아슬하게 한참을 올라갔습니다.


귀가 멍멍해지고, 덕유산의 겹겹 산자락들이 한눈에 들어올 때쯤


안국사 주차장에 겨우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적상(赤裳) 이란 뜻은 '붉은 치마'란 뜻인데



가을에 단풍이 들면 적상호를 둘러싸고 있는 이 일대 산의 모습이



마치 붉은 치마를 둘러 입고 있는 모습처럼 단풍이 절경인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가을 단풍도 아름답지만, 봄의 경치도 하나 버릴 것이 없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적상호수입니다.


댐공사로 원래 저 물 속에 위치했던 안국사는


1993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을 완료하게 됩니다.


다섯 개 마을이 물 속에 잠겨버리고


지금의 위치로 절이 이전을 해 버리자


적상호나 적상호 전망대를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 이외엔


안국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절 살림이 아주 어렵다고 법당에서 해설을 해 주시던 보살님이 호소합니다.





안국사 대웅전은 보수 공사가 한창이라


대웅전을 지나 뒷쪽에 위치한 극락전으로 들어가 참배합니다.


극락전 입구에 목련이 이제 막 꽃잎을 열기 시작한 여기는


구천동 골짜기 보다 위치가 높아선지 부산의 3월 같은 계절이었습니다.







극락전 참배를 하고 잠시 경견한 마음으로 모두들


선정에 들었습니다.


산의 맑은 정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씻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동방 저고리를 풀 먹여 잘 다려입으신 법당 보살님이


안국사의 유래와 안국사에 있는 건물 및 보물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셨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한 본을 보관했던 사고(史庫) 와 함께 한 사찰인데


양대 전란을 거치면서 나머지 사고는 모두 불탔으나


이곳에 두었던 실록만이 무사히 남겨져


1910년 규장각으로 옮겨가고, 지금은 건물만 입구에 남아 있습니다.





극락전에 보관된 보물 중의 하나인 괘불탱화입니다.


액자 속의 것은 축소판 사진이며, 실제의 탱화는 극락전의


거의 끝에서 끝까지 자리를 차지하는 거대한 나무 보관함 속에 두루말이로 들어 있습니다.


일년에 한번씩 문화재청에서 나와 방부재 처리도 하고 보관 상태를 확인하고 간다고 하네요.





옛날 한 스님이 극락전 단청불사를 위해 고심할때 한 노인이 나타나


“전각 주변에 천막을 치고 백 일동안 들여다 보지 말라”고 한뒤 단청을 시작했는데


궁금증을 못 이긴 스님이 99일째 되는 날, 천막안을 들여다 보고 말았답니다.


극락전 단청 불사를 완성한 공덕으로 사람이 되고자 했던


한 마리 학이 100일을 하루 남겨두고 스님이 엿보는 바람에


붓을 입에 물고 단청을 하다 그만 붓을 떨어드리고 날아가 버렸답니다.


그때, 칠하지 못하고 남겨졌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미완의 단청 부분입니다.


물론 그 학도 사람으로 환생하지는 못했겠지요.





극락전의 중앙 출입문에서 마주 바라다 보이는 덕유산 향적봉 봉우리


올라가는 능선의 굽이에 잔설이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안국사는 지난 4월까지도 눈이 내려 급경사길이 이어진


사찰 올라오는 길이 출입이 통제되었다고 합니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것 같던 일은


절마당 귀퉁이에 이제 매화가 막 꽃망울 터뜨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향기가 어찌나 그윽하던지...한참을 눈을 감고 향기에 취해 있다가


사람들 거의 다 내려가고 나서, 잽싸게 꽃망울 10개쯤 따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나중에 버스로 돌아와서 뜨거운 물 부어 매화차를 만들어


평생 처음 먹어보는 5월의 매화차를 한모금씩 아끼며 나누어 마셨습니다.


그 매화 향기가 눈 감으면 아직도 주변에 맴돌 듯 합니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평일이라 굳게 문이 닫혀 있던 찻집 <운상 :雲裳>






안국사의 돌우물


돌틈에서 차갑고 달짝한 물이 솟구치고 있었지요.


물로 입을 한번 더 즐겁게 만들어주고


굽이굽이 덕유산 자락을 마주보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쉽지만 이제 진안으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