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서둘러 마지막 순례 사찰인 진안의 <천황사>로 갑니다.
'진안'하면 '마이산'자락에 있는 <탑사>만을 생각하지만
마이산 너머에 정천면 갈용리에 위치한
신라 때부터의 고찰 <천황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절이 위치한 도량은 제법 넓은 곳인데도
공양주 보살도 하나 없이 스님 혼자 계시는 그런 절입니다.
절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는 복숭아꽃이 한창입니다.
유난히 색이 짙은 자목련도 이제 꽃망울 터뜨립니다.
예닐곱 가구 남짓한 토담집이 모여있는 마을을 지나
사찰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해가 슬며시 기울어갑니다.
참~! 하루가 짧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울가에도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이제 막 새 잎사귀 펼쳐내는 전나무들이 도열하듯 서 있습니다.
고즈넉하고 정겨운 시간입니다.
절 입구에는 오래된 절의 역사를 말해주듯이
묵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네요.
<천황사>의 자랑인 400년이 넘은 전나무입니다.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지만, 벼락을 맞아 우듬지가 잘려버렸습니다.
해가 막 서산으로 넘어가려는 시간,
아마도 보통의 이 시간엔 스님들의 저녁 공양 시간일텐데...
어쩌다 보니, 스님의 공양 시간을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전화를 받은 스님께서 웃으시며 입구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단청도 하지 않은 소박한 대웅전의 모습이
그날 본 세 사찰 중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오래된 나무 법상이 고졸한 맛을 더해주는 법당에서
참배를 마친 우리는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간단한 생활 법문을 들었습니다.
호남의 절들이 다들 그렇지만, 특히 이 절의 살림이 가난하다는 느낌은
법상과 연화좌대 등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각자 개인적으로 초파일 연등을 다는 회원들도 있었지만
총무와 의논해 특별히 이 절에
<맑고 향기롭게> 부산 모임의 이름으로 큰연등을 하나 달아 드렸습니다.
공양주도 없다는 절집의 장독대는 제법 반질거리며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어쩐지 마음 한쪽이 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산 경남 지역의 사찰들은 그야말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번쩍이는 새 건물들을 절집에 들어 앉히고
거대한 부처를 만들어 점안식을 하고,
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요사채를 만들고...야단인데...
이 오래된 적막한 사찰은 부처님 전에 올릴 양초가 없어 걱정이니...
특이한 복사꽃입니다.
한 가지에 두 가지 색상의 복사꽃이 피어있네요.
스님께서 우연히 한 그루 사다 심었다고 하는데
장독대 곁에 있는 복사꽃은 돌연변이종인가 봅니다.
평생 금강경을 강의하셨다는 명봉 선사의 부도가 특이한 모양으로 남아있습니다.
<안국사>와 <천황사>는 모두 임란 때 승병들의 거처로 쓰였던 사찰입니다.
함께 돌았던 세 사찰이 모두 금산사의 말사이기도 합니다.
전나무 숲길을 따라 돌아내려오는 길~!
스님께서 우리들이 봉사자 모임이라고 하니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사월초파일날 일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걱정이라고
혹시라도 여건이 되시는 분은
그 전날부터 1박 2일로 와서 일 좀 해주면 안되겠느냐고
웃으시면서 부탁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누구라도
인연이 되면 가서 도와주면 큰 보시가 되지 싶습니다.
(진안 천황사 : 063-432-6161)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돌담길을 돌아내려 옵니다.
돌담 가운데 골담초꽃이 노랗게 피어 있습니다.
콩과에 속하는 골담초꽃은 신경통과 고혈압에 좋다고 하던데...
여기는 이렇게 피어 있어도 아무도 따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홍매화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색상도 선명하고 요염하게 피어 있습니다.
부산에서 5월에 떠난 여행은
무주에서 4월과 만나고, 적상산에서 3월과 만나는
시간을 거슬러가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먼 길 되짚어 다시 5월로 돌아온 밤~!
맑고 향기로웠던 님들과 함께 다닌 하루의 시간들을
서리서리 말아서 기억의 항아리에 넣습니다.
고단하고도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함께 하신 모든 분들 감사했습니다.
가을볕 바스라지는 청명한 날에
다시 길 떠날 차비해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