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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08-04-07

    법정스님 인터뷰-2003년

본문

“넘치는 정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향기는 여유입니다”


수년째 강원도 산골에서 살면서 ‘무소유’를 실천 중인 법정 스님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에게 ‘무소유’의 가르침을 던진 법정스님이 정보화 사회에서의 바른 삶에 대한 모습을 제시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 스님은 얼마 전 길상사 법회에 참석해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지켜야 할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언제나 삶의 풍요를 강조하는 스님의 특별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전국을 온통 하얀 설원의 나라로 만든 눈구름이 걷히고 하늘 가득 맑은 햇살이 비추던 지난 2월18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는 평소보다 많은 신자들이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날은 강원도에서 수행 중인 법정스님이 설법을 하는 날로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귀한 말을 듣기 위해서다. 자주 뵙지 못하는 법정스님이 오래간만에 길상사에서 법회를 연다는 이야기는 취재팀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스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길상사는 한겨울 산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봄을 맞고 있었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수행을 하면서 불자의 길을 걷고 있는 스님이 특별한 기약 없이 가끔씩 길상사에 내려오는 날이면 늘 고요하기만 하던 경내에 활기가 돈다. 큰 스님을 맞이하기 위한 제자들의 움직임 그리고 그 분의 특별한 이야기를 듣기 위한 신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복이 쌓인 눈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내리쬐는 길에 홀연히 나타난 스님은 언제나 그렇듯이 평화롭고 고요한 얼굴이었다. 솜으로 누빈 승복을 입고 여전히 쌀쌀한 바람을 막기 위한 모자가 스님이 몸에 걸친 것 전부였다. 스님이 쓴 수필집의 제목 그대로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불자답게 간결하고 소박한 차림새였다.


절에 도착하자마자 주지스님 방을 먼저 찾은 법정스님은 신도들에게 전할 이야기를 정리하며 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는 잠시 동안에도 스님이 도착한 것은 미리 안 신도들은 스님을 뵙기 위해 직접 방으로 찾아왔다. 이때가 아니면 스님을 또 뵙지 못하기 때문에 꼭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신도들도 눈에 띄었다.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을 일일이 맞이하면서 인사를 나눈 다음 모든 준비를 마친 스님은 다소 위엄이 서린 모습으로 극락전에 올랐다. 신도들과 삼배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날 법당에 모인 신자들이 너무 많이 앉은 자세로 반배를 나눈 스님은 나지막하고 고요한 목소리로 법문을 전했다.


현대문명은 인간의 삶을 구속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얼마 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서울에는 30여 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강원도에는 해마다 몇 차례씩 이같은 폭설이 내립니다. 산 속에서 살다 보니 이런 눈에는 익숙합니다. 습관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런 눈이 내리면 걸을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언제나 차에 의존하는 습관 때문에 그저 차 안에 갇혀있고 맙니다. 그저 몇 분, 몇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차 속에 앉아 몇 시간씩 보냅니다. 이것이 바로 도시 문명의 허점입니다. 사람이 차에만 의존하다 보니 보행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연의 위력 앞에서 문명의 한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의 질서를 잊고 사는 요즘 우리에게 자연과 문명의 상관관계를 깨닫게 합니다.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갈수록 발달이 되는 문명은 물론 많은 편리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 도달하게 되면 그것은 불편으로 바뀌게 됩니다. 지금 세상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보화사회라고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보 홍수사회라고도 하죠. 요즘 우리 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가까이 있는 컴퓨터는 인간이 만든 문명 중 가장 놀라운 기계입니다. 컴퓨터에는 가공할 만한 기억 장치가 있는데 몇해 전에 바로 컴퓨터의 이 기억 능력을 경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일 때문에 잠시 외국에 다녀온 일이 있었는데 돌아와 보니 운전면허증의 갱신 기간이 지나 있더군요. 사람이 바쁘게 살다 보면 잠시 잊을 수 있는 일인데 아무튼 그것 때문에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벌금 5만원을 내던가 아니면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국내에 없었다는 증명서를 떼오라고 했습니다. 그냥 벌금을 낼까 생각하다 신도들이 부처님 앞에 바친 돈을 그렇게 쓸 수 없어서 출입국관리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제 주민등록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하니 그동안 제가 외국에 다녀온 기록이 일목요연하게 뜨더군요. 그 순간 컴퓨터에 대해 편리하다거나 놀랍다는 생각보다는 섬뜩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늘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사람이 만든 연장에 불과한 컴퓨터지만 우리는 그것에 의해 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생활화되어 있는데 이것 때문에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말들이 나옵니다. 자살 사이트가 있고 또 원조 교제라는 말도 있더군요. 이것들은 바로 인터넷을 통해 불거진 문제점들입니다. 또한 컴퓨터를 이용한 신종 사기극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바로 정보의 과용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지나친 정보는 삶의 풍요를 빼앗아 갑니다


‘데이터 스모그’란 말을 아실 것입니다. 과도한 정보에서 유발되는 정보 쓰레기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지나친 정보는 유해한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과연 그런게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넘치는 정보는 사람을 화나게 하고 짜증스럽게 만듭니다. 최소한의 정보는 필요하겠지만 과도한 정보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조용한 순간들을 밀어냅니다. 자신의 일상을 생각하고 명상을 하는 일을 가로막습니다. 이는 삶의 질을 저하시킬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만 받게 할 뿐입니다.


남미의 카리브 해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휴양지입니다. 미국의 한 언론사 편집인이 이곳에서 호화로운 휴가를 보냈다면서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곳에서 정말 원했던 사치를 누렸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그 사치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곳에는 TV도, 라디오도, 신문도, 컴퓨터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순수한 천국이란 정보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 정보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들어가는 현대인들이 귀기울일 만한 명언입니다. 과거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사람의 말도 기억이 납니다. 그는 정보가 많은 사람은 불행하다고 했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유용하게 사용을 할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늘 말하는 것이지만 지나친 것은 모자람보다 못한 것이죠.


여유로운 삶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사람이 만든 모든 기술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자동차는 시간과 공간을 단축해주지만 환경 오염의 주범이며 부상과 죽음을 유발하는 흉기이기도 합니다. 요즘 전자우편을 많이 쓰시죠. 이메일은 빠른 것이 장점입니다. 단 몇초 만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을 정도이니 얼마나 빠른 것입니까. 하지만 빠른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너무 즉각 오니까 싱거운 점도 있습니다. 편지란 육필로 써서 오는 동안 뜸이 들여지는 것인데 그 과정을 생략하니 싱거운 것이죠. 편지뿐만 아닙니다.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뜸들이 시간이 필요한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고 기다리지 못합니다. 무엇이든 즉각적으로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인터넷 보급 이후 이혼률이 증가하고 있다는데 이는 가상 세계에서 혼자만의 세계를 꿈꾸면서 정작 현실을 등한시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기다릴 줄 모르기 때문에 그리움이 고일 틈이 없습니다. 그리움이란 말조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디라도 전화만 하면 되니까 그리움이 쌓일 틈이 없습니다. 그리움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향기입니다. 사각의 컴퓨터 세계, 그 가상의 세계에서는 그런 향기를 느낄 수 없습니다. 씨앗을 땅에 묻으면 사계절의 질서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동양의 유유자적하는 마음, 그런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삶의 목표는 순간순간에 있는 것입니다. 그저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면 그 후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목표를 향해 곧장 달리기보다는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여유를 부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바로 그런 여유를 누리고 즐겼지만 정보화, 산업화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그저 시간만 따집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삶의 형태와 모습이 달라집니다. 늘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는 사람이고 여유를 갖는 사람은 마음의 밭을 가는 사람입니다. 누리고 즐길 줄 아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행복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마음에 정신 문명의 축을 세웁시다


다시 정보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정보는 우리가 먹는 음식과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으면 해로운 것처럼 정보 역시 선별 없이 닥치는 대로 수용하면 탈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를 멀리 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쏟아지는 정보, 발달을 거듭하는 문명의 폐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그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텔레비전은 사람의 사고를 통제합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그 순간 만큼은 바보가 됩니다. 가정에 돌아가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시간을 뺏긴다면 귀중한 인생을 무가치하게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둘째로 시시한 뉴스는 피해야 합니다. 늘 똑같은 정치기사, 늘 비슷한 경제 기사, 늘 짜증이 나는 사회 기사를 반복해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요즘 방송도 보지 않고 신문도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을 느끼지 않습니다.


셋째 때로는 휴대폰을 두고 다니세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다닙니다. 하지만 그 휴대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저도 가끔은 휴대폰에 대한 유혹이 생기긴 합니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을 때 더 자유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도 모두들 잘 살자 않았습니까. 휴대폰이 없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넷째 숱하게 쏟아지는 광고에 저항을 하십시오. 신문도 여러 가지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데이터를 단식하면 정보 사회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토인비는 현대 문명의 위기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기술 문명이 토끼처럼 뛰어가고 있고 정신 문명이 거북이처럼 그 뒤를 쫓고 있다. 인간의 사회에서는 정신 문명이 축을 이루어야 합니다. 정신 문명이 풍요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서 일깨워야 할 것입니다.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시시한 쾌락을 버림으로써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보다 큰 기쁨을 위해 시시한 쾌락을 기꺼이 버려라. 보다 더 풍요롭고 향기로운 삶을 위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봅시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들에게 법정스님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강원도 산골에서 화전민이 살다 버린 집에 거처를 마련하고 문명과는 완전히 단절된 채 생활하고 있는 법정스님의 눈에 속세 사람들의 생활은 그저 거추장스럽게 보일지 모른다. 해발 8백 미터가 넘는 산골의 오두막에서 땔감을 구해 불을 지피고 밭을 일구면서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는 스님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법정스님이 지나친 정보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넉넉한 삶을 지향하나고 강조한 것 역시 스님의 생활을 바탕에 깔고 이야기한 것이다.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않아도 아무런 불편이 없는 생활 속에서 스님은 진정한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 박재철’이라는 속세의 이름을 버리고 출가한 법정스님은 1953년 충남대 상과대학에 입학했다가 1954년 당대의 큰 스승이었던 효봉스님의 제자로 수도승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등에서 수도 생활을 했으며 늘 정갈한 수도승의 모습을 보였다. 70년대 후반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홀로 살았던 스님은 이곳에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자 수필집 ‘버리고 떠나기’를 발표한 뒤 훌쩍 강원도 산골로 거처를 옮겼다. 문명의 흔적이 전혀 없는 산골 오지에서 스님은 자신을 수양하면서 맑고 향기로운 삶을 지켜가고 있다. 출가를 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났다는 스님은 밤에 촛불과 등잔 밑에서 책을 읽고 자연의 소리를 벗삼다 보면 현대인이 문명의 이기에 너무나 길들여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잃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특히 본인이 발표한 책의 제목인 ‘무소유’를 실천해 보임으로써 물질의 미련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얼마전 시인 류시화가 스님의 산속 생활과 편지글을 묶은 산문집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펴냈다. 이 책에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의 삶이 계절별로 전개되어 있다.


●글 / 김정덕 기자 ●사진 / 임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