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국토에 대한 무례 -법정스님 길상사서 봄 정기법회 조상 대대로 영혼과 살과 뼈를 묻어온 곳이자 후손들에게 물려줄 신성한 땅을 대운하 사업으로 훼손하는 것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자 모독입니다." 불교계 원로 법정(法頂) 스님이 20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에서 봄 정기법회를 갖고 찬반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법정스님은 사찰 앞마당을 메운 1천여 명의 신자들에게 설법하면서 "이 땅은 사람만이 아니라 겉모습만 다른 수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어서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면서 "그런 땅이 근래에 와서 방방곡곡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개발에 의해 피 흘리고 신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계천은 기존 하천을 복원한 것이지만 한반도 대운하는 멀쩡한 땅을 파헤치고 토막 내는 반자연적 사업"이라면서 "한반도 대운하에 찬성하는 사람은 개발사업으로 주변 땅값을 올려 재미를 보려는 땅투기꾼과 건설업자들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정스님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은 또 우리 사회의 생명경시 풍조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렸다. 그는 "농경사회에서는 씨를 뿌리고 새싹이 돋아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살기 때문에 생명의 소중함이 사람의 마음 안에 싹튼다"면서 "흙을 멀리하고 도시화, 산업화, 정보화 사회에 살면서 인성이 메말라가다 보니 이유없이 어린이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등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법정스님은 "육체는 죽일 수 있을지 모르나 영혼은 그 무엇으로도 죽이지 못하며, 남을 죽이는 것은 곧 자기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겨울 지병인 천식이 악화돼 구토와 헛구역질 등으로 50일 동안 사실상 단식 상태에 있었다고 밝힌 그는 "70년 넘게 몸을 끌고 다니다 보니 부품이 삐걱거려 정비공장에 다니느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렸다"고 근황을 전했다. 법정스님은 "앓다 보니 새삼스럽게 둘레에 있는 모든 사람과 나를 둘러싼 모든 사물들이 고맙게 느껴졌다"면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어서 눈부신 봄날 이렇게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며, 하루하루 즐겁게 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어 "달마스님의 말씀처럼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너그러울 땐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지만 뒤틀리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어질 만큼 옹색해진다"면서 "하루하루 잘 살려면 내 마음을 활짝 열어서 살아있는 동안에 마음을 비워내고, 이웃과 매듭을 푸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법정스님은 설법에 앞서 행지실(行持室)에서 기자들과 만나 "옛 사람의 말에 일각수(一角獸)가 나타나 세상을 파헤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일각수가 온 국토를 파헤치는 포크레인인 모양"이라고 무분별한 국토개발사업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또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티베트 사태 등에 대해 할 말을 못하는 실정이니 양식 있는 사람들과 언론이 정부를 대신해 발언해야 한다"면서 "우리도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으니 남의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예뻐서라기보다 지난 정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젊은층도 보수화된다고 하는데 지난 10년간 이렇다할 소득도 없이 구호만 요란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아플 때마다 서서히 소멸해가는 몸의 실체를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면서 "버리고 가야할 몸이나 집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이 세상이 인연 따라 잠시 머무는 곳임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서 칩거하고 있는 법정스님은 매년 봄, 가을에 열리는 길상사 정기법회 때 일반 신도를 대상으로 설법하고 있다. 한편 길상사는 법회 후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반도 대운하 추진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펼쳤다. ckchu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