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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06-04-13

    2006년 4월-<행복의 발견>

본문

4월 부산모임 독서모임은 지난 5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부산모임 사무국에서 가졌습니다. 이 달에도 김순덕, 유재경 회원님, 사무국 직원 2명이 함께 자리하였습니다.

이 달에는 <여행의 기술>이라는 선정도서에서 발췌한 몇 가지 소재로 각자의 일상과 여행,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은 후기는 이러합니다.


*김순덕 회원님


여행의 기술이란 책명을 보면서 나는 먼저 여행할 때 도움이 되는 책이겠구나 하며 책장을넘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책이라는 게 나를 가르치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모름지기 책이란 내가 또는 우리 모두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점이 눈꼽만큼도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의 지은이의 솔직한 감정 표현에 잠시 미소 짓다가도 내가 살아오면서 남 앞에서 보인 내숭이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과 같이 왠지 모르는 진실이 분출됨으로써 느끼는 인간적 고뇌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본문에도 ‘마음’이 화두가 되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앞서간 예술가들의 혼을 찾아 떠난 저자의 여행 전개 구성이 흥미롭다. 논문의 흑백사진들은 골동품을 대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도 그곳을 다녀온 듯 생각에 잠기게 한다. 햇살이 눈부시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다. 자연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밑줄 그은 구절>


-우리는 지속적인 만족을 기대하지만 어떤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또는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은 사실 짧다.


-고대과학자들은 행복의 핵심적 요소는 물질적인 것이나 미학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눈은 자신이 보는 것을 머릿 속에 있는 지식과 일치시키려 한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나무는 인내의 상징이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아니고 양은 양일까?


-오직 한 가지 입장만 가지고 사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숭고함을 우주의 힘, 나이, 크기 앞에서 인가의 약함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유해할 수 있고, 심지어 사람을 도취시킬 수도 있다.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숭고한 풍경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다.


-우리 삶이 모든 것의 척도는 아니다. 숭고한 곳들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하찮음과 연약함을 생각하도록 하라.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관객으로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는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 그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은 버리게 된다.


강희정 간사


지난 2월의 걷기 예찬과 마찬가지로 이번의 <여행의 기술>도 참 읽기 힘들었다. 그나마 보들레르, 고흐, 워즈워스 등의 안내자들의 이야기가 있어 조금은 수월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거 같다. 학교 다니면서 시험을 위해서 화가와 작품을 외우고, 작가와 작품을 서로 짝을 지어 외우면서 이름만 익숙했던, 유명한(?) 분들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적인 부분들에 대한 설명들이 그 분들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외 이 책의 작가의 이야기나 작가가 설명한 부분들의 이야기는 흥미가 가지 않았다. 단순히 글을 읽은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와 같이 독서모임을 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과장님, 함께 참석해 주셨던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생각하게 되고 또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책읽기가 끝이 나는 것 같다.

매월 다른 아이템과 다양한 내용으로 독서모임 진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 과장님과 꾸준히 참석해 주시는 회원님들께 참 많이 감사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독서량을 떨어뜨리기만 하다가 매월 한 권의 책이라도 읽게 된 내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도 뿌듯하다.


*김윤정 과장


<여행의 기술>은 알랭 드 보통의 작품으로는 두 번째로 접하는 책이다. 맨 처음 접한 작가의 작품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작가에 대한 느낌이 너무 강하게 작용해서 이번 책을 읽는데도 나름의 고역스러움이 있었다.

우선 개인적으로 가진 작가에 대한 편견은 작품 전반에 묻어나는 색채가 지나치게 ‘유럽적(?)’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와 사상과 정서는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전제한다면 그 사실은 너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느꼈던 서양적인 색채는 거부감을 느낄 만큼 치중되어 있었다. 깜냥으로 이해하기에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는 이 달의 선정도서인 <여행의 기술>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세상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 외에도 많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흔히 잊곤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예술 작품에도 얼마간 책임’이 있고, 작가들은 이러한 환상을 깨뜨리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본인의 작품 형성 또한 이 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 여기더라도 나에게 있어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은 불친절하다. 단순명료한 하나의 문장을 언급하거나 제시하기까지 작가는 서구 편향적 정보들을 불필요하다 싶은 영역까지 나열하고, 이는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 자주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

물론 이는 내 개인의 지적 한계이거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고 짚어본다. 그러나 적어도 대중매체라는 수단을 통해 대중에게 제공된 대중예술 창작품의 공적 책임(독자로 하여금 이해와 정보전달을 기본으로 하는)은 작가의 색채이기에 앞서 역량이라 생각된다.

1월의 선정도서였던 박종호님의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과 이 작품을 비교하여 본다면 특정 유명인물이나 예술작품과 관련된 지역을 따라가는 여행의 방식은 비슷하지만 작가를 따라 여행길을 나섰던 독자의 느낌은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라 여겨졌다.

이는 단지 작가의 차이 때문도 아니고 독자의 작품에 대한 취향 차이도 아닐 것이라 짐작해 본다. 이러한 작가에 대한 나의 편견들이 이번 선정도서를 읽는 동안 더욱 짙어졌고, ‘법정스님은 이 책을 읽으시고 어떤 느낌과 후기를 가지셨을까, 이 책을 우리에게 선정해주신 이유가 뭘까’하는 어리석은 질문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막상 독서후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나는 깊은 반성을 해보게 되었다. 개인적인 선입견을 이 번 독서를 통해 깨뜨리지 못한 우매함, 편견을 깨뜨려보고자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 이런 저런 발버둥을 쳤던 나의 용렬함에 자주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책을 읽고 소감까지 나누는 자리를 가졌으나, 나에게 이 책은 아직 읽혀지지 않았고, 이 책은 나에게 언젠가 다시금 읽어져야 할 숙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