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을 새해를 맞아 독서모임에 대해 기원했던 바가 이루어졌는지 신입회원님이 새로이 동참해주셨습니다. 김희숙 회원님이십니다. 이에 지난해 꾸준히 참석해 주셨던 유재경 회원님, 김순덕 회원님, 그리고 사무국 직원이 함께 <야생초 편지>로 널리 알려진 황대권 선생님의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를 읽고 새해 첫모임을 열었습니다.
유재경 회원님
우선 책 제목에서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봄이면 도시 보도블록 사이에 있는 흙에서 간신히 피어 올라온 민들레를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곤 한다.
그러노라면 장미보다 훨씬 화려하고 강한 힘을 느끼게 하는 꽃이 민들레라는 걸 알 수 있다. 본문 내용에는 생태계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강한 호소로 가득 차 있다.
환경파괴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기 쉽게 근거를 들어 자세히 조목조목 설명하는 부분은 법정스님의 글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무수히 강조하고 있는 대량 생산, 대량소비(자본주의 본질)가 끝도 없이 달리고 있는 지금 조화롭게 생태계 보존을 해나가는 방법이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그것은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곡선의 중요성과도 같다고 본다. 아무리 힘들어도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에 개인의 작은 노력부터 실천해 나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특히 소위 지식인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미루는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늦었지만 개인부터 단체까지 환경보호 운동이 많이 활발해지길 바라본다. 우리의 생명이므로!
김순덕 회원님
저자의 지난한 삶의 역경 뒤에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라서 더욱 강한 힘이 나의 마음을 출렁이게 하는 것 같다. 산을 자주 오르내면서도 무심코 스쳐간 야생초들의 이름도 짚어봐야겠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먼 자연환경에 대한 나의 일상생활 속의 삶도 다시 체크해 봐야겠다는 책무도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생태주의 삶에 우리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어야 하고 실천되어야 함에도 마음 한 편 의심이 남는 건 지금 우리는 아직도 더 나은 물질문명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다는 슬픔이다.
내가 바라는 것도 저자가 책의 끝머리에서 제시한 생태주의 시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영성의 회복이라 한 것과 동일하다.
내 안의 불성을 찾아 멀리 떠나보는 여행을 말이다.
강희정 간사
황대권 작가의 두 번째 책을 읽었다. 처음 읽었던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야생초 편지> 였다. 내가 읽고 싶어 선택해 읽었던 책 아니라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내용이 새롭기도 하고 그동안 잘 접하지 못하던 내용들이 신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렇게 내게 큰 감동을 주었던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에 독서모임을 하면서 그 책을 다시 찾아보았는데 책이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빌려 주었을 텐데 기억이 없다.
그리고 두 번째 <민들레는...>도 쉽게 읽기는 했지만 뭔가 마음이 무겁고, 정말일까. 정말 그렇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시원하지 않았다.
책에서 말하기로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우친 바대로 사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내가 알게 된 것을 그리고 아는 것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참 답답했다.
김윤정 과장
복역기간 동안 쓴 편지글과 사색의 글이 정리, 출간되어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점에서 저자 황대권님은 <나무야 나무야>의 저자 신영복 선생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각각의 전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농림전공 황대권님은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사학과 철학을 전공한 신영복님은 역사를 주제로 사회를 조명하고 인생을 관조하는 사색의 길로 이끈다. 노동을 해서 땀을 흘릴 때 우리 몸의 수억 개의 세포가 열리고, 세포가 열려야만 자연과 세계가 교감을 할 수 있다.(조용헌, <방외지사>)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노동과 산물은 분리되고, 화폐의 사용으로 인해 인간과 노동이 서로 소외되고 있어 자연과 세계가 교감할 수 있는 길은 모두 차단되어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유지를 위한 대량생산, 대량소비와 이에 따른 환경파괴는 거역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대 최재천 교수는 우리 삶의 올바른 회생은 순환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의 패턴을 다시 일구는 것으로 모든 생명이 서로서로에게 밥이 되고 공양이 되는 우주의 근본질서를 겸손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최재천, <새들은 과외수업을 받지 않는다>)는 명확한 대안을 밝혔다.
그러고 이미 많은 이들이 이를 공감, 공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실천이다. 이‘실천’에서 막힌다. 그래서 답답하고 갑갑하고 안절부절하게 된다.
모르는 게 약, 아는 게 병인 것 같다는 푸념까지 하게 된다. 이 화두에 사로잡혀 있던 중 2월의 추천도서인 <나무를 안아보았나요>에서 답을 얻었다.
<나무를...>의 저자 조안 말루프는 말한다. “지구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생명을 담보로 시작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패러독스에 대한 유일한 도덕적 해결책은 우리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우리가 그런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이다"라고.
실천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에서부터 제대로 된 실천은 시작될 것이기에.